"남들보다 나은 수익을 내기 위해선 시장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직관이 필요합니다. 설령 본인이 판단하기에 안 좋아 보이면 그 종목이 삼성전자라 하더라도 남들 눈치를 보며 들고갈 필요가 없습니다. "

자산배분형펀드인 'KTB엑설런트주식혼합C' 등을 운용하고 있는 안영회 KTB자산운용 CIO(최고책임투자자)는 운용 경력만 16년째인 베테랑 매니저다. 1992년 조흥증권에 입사하면서 주식부에서 첫 운용을 맡았고 96년 조흥투신운용(현 SH자산운용)의 설립 멤버로 참여해 당시 업계 최고의 수익률을 자랑했다. 이후 자리를 옮긴 현대투신운용에서는 펀드 열풍의 주역이었던 '바이코리아' 펀드를 관리하면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면 조기에 상환되는 '스팟펀드'로도 명성을 날렸다. 그가 높은 펀드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이런 경험을 통해 쌓은 '내공' 덕분이다.

그는 오전 7시에 여의도로 출근해 200여건의 분석 보고서를 읽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경기와 업종, 종목에 대한 분석 내용을 토대로 전체 시황을 그려낸다. 그는 "개별 기업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해당 업종과 시장의 추세가 보인다"며 "오랜 기간 성실하게 데이터를 쌓다 보면 조그만 변화에도 큰 그림을 읽어낼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머리 속이 복잡하거나 시장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그는 축적해놓은 과거 자료들을 들춰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분석상의 오류를 잡아내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이만한 방법이 없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짬이 날 땐 초한지나 삼국지 같은 역사만화를 즐겨 본다는 그는 "복잡하지만 역동적인 중국 역사를 읽다보면 저절로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는 펀드매니저로서의 '직관'을 강조하지만 단순히 직관에만 의존해 투자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12명의 섹터 애널리스트나 운용팀들과 수시로 회의를 갖고 펀드 내 주식 편입비율과 업종 및 종목의 비중을 조절한다. 부드러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의 투자성향은 꽤 공격적이다. 장이 좋을 때는 주도 종목을 중심으로 발빠르게 매매에 나서는 반면 장이 빠질 때는 과감하게 주식들을 털어낸다. 그는 "아주 드문 경우긴 하지만 시장이 정말 안 좋을 때는 펀드 내 주식 비중을 0%까지 낮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가 운용하고 있는 'KTB액티브자산배분형펀드'와 'KTB엑스퍼트자산배분형'의 주식 편입비중은 7월30일 현재 30% 선에 머무르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반등했던 4~5월엔 70~80%까지 늘리기도 했지만 이후 시장이 고꾸라지자 빠르게 비중을 줄여나갔다. 덕분에 이들 펀드는 최근 3개월간 주가가 많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수익률을 웃도는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3월 설정된 'KTB엑설런트주식혼합C'의 경우 지금까지의 누적 수익률이 46.3%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11% 오르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30% 이상 초과 수익을 내고 있는 셈이다.

그는 "주식 투자는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물 흐르듯 대처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면서 "자산배분형 펀드는 주식비중을 0~90%까지 탄력있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특히 불확실성이 커진 요즘과 같은 장세에서는 단기채권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등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을 편입할 수 있어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매니저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는 "실수를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실수를 했을 때 얼마나 빨리 시정할 수 있느냐"라고 강조했다. 그는 펀드 수익률이 전체 자산의 ―5% 선까지 내려가면 1차적으로 수익률이 나쁜 종목부터 정리에 들어간다. 손실폭이 ―10% 선까지 확대될 경우엔 가차없이 주식비중을 30% 이하로 줄이는 방법으로 리스크를 관리한다. 특정 종목에 돌발 변수가 생긴 경우에는 당일이라도 포트폴리오에서 빼버린다.

현재 그가 펀드 내에 편입시켜 놓은 종목은 삼성전자와 포스코 LG화학 등 15개 정도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보다 포스코의 비중이 많다. 그는 "펀드를 운용하는 입장에서 벤치마크지수를 따라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삼성전자라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대범함에 주변 지인들은 그에게 '독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우스개 소리처럼 자신은 주식에 애착이 없다고 말한다. 업황이 돌아서거나 상승여력이 낮다고 판단되면 시장이 아무리 좋아도 가차없이 버린다는 얘기다. 시장이 광분했다 싶을 때도 여지없이 손을 털고 나온다.

그는 대형 우량주를 선호한다. 절대수익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유동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게 이유다. 상승장에선 실적이나 업황 사이클이 돌아서기 시작하는 종목들을 선점해 수익률을 극대화하고 하락장에선 상대적으로 실적 가시성이 뛰어나고 현금 보유량이 많은 종목들로 방어에 나선다. 그는 "침체에 빠진 주식시장이 회복되기 시작하면 낙폭이 크고 이익이 안정적으로 늘어나는 업종 대표주들이 가장 먼저,그리고 가장 크게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국 금융주들이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하반기엔 제조업 경기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최악의 경우 내년 상반기까지 주식시장의 부진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코스피 1400선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국내 증시 상황에 대해 "밸류에이션이 낮아지긴 하지만 아직은 사기도 팔기도 애매한 '계륵(鷄肋)'과 같은 상태"라고 분석했다. 외국인 매도가 지속되더라도 더 이상 지수가 빠지지 않거나 경기지표들이 돌아설 기미를 보일 때가 주식을 살 때라면서 미리 예단하지 말고 인내를 갖고 시장을 따라가라고 조언했다.

글=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