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 이코노믹스|토마스 소웰 지음|서은경 옮김|물푸레|637쪽|2만7000원

대학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들이 다시 경제학을 알고 싶다고 해서 경제학 교과서를 집어드는 건 쉽지 않다. 딱딱한 이론,수치와 그래프로 가득 차 있다는 기억을 쉽사리 떨치기 어려운 탓이다. 경제학 교과서들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교과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전히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들은 부족해 보인다.

최근 몇 년간 경제학 에세이들이 유행처럼 쏟아져 나온 것은 바로 이런 허점을 간파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과서에 비해 쉽게 손이 간다는 점에서 확실히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이 스타일도 사람들이 조금씩 싫증 내기 시작한 것 같다. 재미있다 싶어 다 읽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이야기들의 잔치가 끝난 뒤에 오는 일종의 공허함 같은 것이다.

<<베이직 이코노믹스>>는 교과서와 에세이의 그런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경제학 상식서다. 얼핏 보면 말 그대로 기초경제학 교과서 같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고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알토란 같은 이론과 논리들을 제대로 요약해 놨다. 경제학을 접해 보지 않은 사람도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막힘이 없고 정리도 깔끔해 보인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던지는 시사성 강한 메시지다.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현란한 선동,널리 울려 퍼지는 도덕적 선언들에 속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증명하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듯 그 속에 감춰진 경제학적 오류들을 하나 하나 파헤친다.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정치인들에게 많이도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사실 화끈하고 멋진 목표를 공표하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독일 국민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법'이 나왔다.

이 법은 히틀러에게 독재 권력을 위임한 것이었고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져 법 이름과는 전혀 다르게 독일 국민들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까지도 큰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던 구소련의 계획 경제 역시 재앙에 가까운 고통을 안겨 주며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정도의 차이일 뿐 지금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당장의 결과에만 집착한 채 그 이후를 보지 못해 발생하는 경제학적 오류들이 적지 않다. 가격 상한제는 집 없는 서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가? 정부가 주택 미분양 지원책을 내놓는데도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은 왜 그런가? 정치인들이 정말 문제다. 나중에 부작용이 일어났을 때 보면 이들은 정치적 효과를 챙기고 이미 달아난 뒤다.

멈춰 서서 생각할 의지를 갖고 경제적 분석틀로 현실을 정확히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둔한 정책 결정자에 그대로 당하고 만다. 그보다 더 통탄할 일은 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둔한 유권자의 한 사람이 되어 그런 사람을 선출하는 데 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경제학적 오류를 제대로 짚어 내지 못하는 언론도 문제다. 경제적 현실을 편리하게도 정치적 이념의 틀에 넣어 해석해 버리거나,겉으로 드러난 흐름만 보고 정작 그 밑에서 작용하는 기초적인 경제 원리를 간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정치인이 경제를 제대로 아는지,어떤 언론이 경제를 제대로 보는지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라고 저자는 주문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상황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복잡하다. 이 책을 읽자 언제부터인가 가장 기초적인 것들이 망가지면서 모든 게 꼬여 버렸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영국 산업혁명의 배경에는 법과 원칙,신뢰가 있었다. 그것이 기술과 투자 유치 등 경제 부흥의 기폭제가 됐다'는 대목이 귓전을 때린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