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독도 표기 변경 문제에 대해 신속한 결정을 내린 것은 다음 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쇠고기 파동이 초래한 현실을 목격한 미국 정부가 독도로 인해 한·미 동맹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고 정치적 부담을 줄이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또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분류한 결정 자체가 다른 사례와 비교할 때 이중 기준인 데다 실효적 지배 국가 위주로 지명을 표시하는 유엔지명표준화위원회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부시의 정치적 결단

이번 미국의 독도 지명 표기 변경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시 대통령이 직접 원상 복구를 지시했다는 점이다. 미국산 쇠고기로 인해 엄청난 시위가 촉발되는 것을 지켜본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다음 주로 예정된 자신의 방한을 앞두고 이런 문제가 터져 한국 내 반미 감정을 더욱 증폭시킬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러시아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쿠릴 열도에 대해선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해 러시아령으로 명기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이중 기준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것도 부담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측의 조치로 한·미 정상회담의 걸림돌은 사라졌다. 백악관 측은 "한·미 정상은 (양국 관계의) 인상적인 발전과 주한 미군의 (지위) 변경 문제는 물론 한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다른 지역의 평화를 구축하는 일에 미국과 동참하는 문제 등 21세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측은 "부시 대통령은 식사 메뉴에 (미국산 쇠고기를) 넣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뜻을 청와대 쪽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남아있는 문제들

미국 지명위원회(BGN)의 독도 표기 원상 복구에도 불구하고 독도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무엇보다 우리의 정책이 변화되지 않았다는 데 관심을 가져달라"면서 "독도 문제는 한·일 양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중립적 독도 표기인 '리앙쿠르 암(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CIA 홈페이지에서는 독도를 여전히 한국과 일본 페이지에서 모두 거론하며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지역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들 역시 독도를 한·일 간의 분쟁 지역으로 보고 '독도'로 부르는 데 주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중국 러시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세계 주요 국가의 정부 기관 및 대학 등에서 독도를 어떻게 표기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파악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외교부는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재외 공관에 각국의 독도 표기 현황을 긴급 파악하도록 지시를 내렸고 이를 자료화하기로 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일본이 미국의 표기 변경으로 인해 로비를 더욱 거세게 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책도 절실하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