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때로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 '앞뒤를 잘 따져보라'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차분하게 살펴보라'는 조언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일단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내가 더 분하네" 하며 맞장구쳐 줘야 내편이라는 생각에 울화가 풀어진다.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슬프거나 기막힐 때도 같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도 누군가 옆에서 함께 울어주거나 말 없이 손만 잡아줘도 한결 기분이 가라앉는다. 사람의 가슴을 사로잡는 것은 설명이나 해명보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행동이나 표시다.

지난 5월 쓰촨(四川)성 대지진 발생 직후 여진 위험에도 불구,피해지역 이재민들을 찾아 눈물로 위로했던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당시 만났던 한 소녀의 편지에 친필로 답해 다시금 국민의 감동을 자아냈다는 소식이다. 총리 앞에서 대성통곡한 그날 이후의 정황을 알린 여학생에게 직접 화선지에 붓으로 쓴 답장을 보냈다는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연초에도 100년 만의 폭설로 교통이 마비돼 발을 구르는 설날 귀성객 앞에 달려갔다. 국민의 안타까움과 설움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가는 이런 '친민(親民)' 리더십으로 '우리 총리'라는 평도 얻었다. 물론 '권력 유지를 위한 노력'이라는 시각도 있다. 쇼란 얘기다.

하지만 낡은 점퍼와 떨어진 운동화 차림으로 피해지역을 돌며 부모 잃은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울먹이고,건물 바닥에 주저앉아 이재민들과 함께 감자를 먹고,붕괴된 건물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총리가 왔으니 조금만 더 버티라"고 외치는 정도라면 설사 쇼라도 괜찮다고 여기는 게 국민이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전문인력을 채용한다고 한다. '서민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구축되도록 표정과 몸짓 말투 옷차림 등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닦여지지 않은 모습은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이미지는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외관과 마음이 함께 만든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