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말엔 흥미로운 게 적지 않다. 덧머리(가발) 말밥(구설수) 뜨게부부(사실혼) 몸틀(마네킹) 끌신(슬리퍼) 기둥선수(스타플레이어)같은 것들이다. 꾹돈(뇌물)도 그 중 하나다. 남몰래 꾹 찔러넣어주는 돈이라는 뜻인 듯한데 촌지나 뇌물이 전해지는 상황을 떠올리면 실로 그럴싸하다.

온갖 방법으로 감춘다고 감춰도 꾹돈인 게 들통나 패가망신하는 일이 허다한데도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위력이 대단한 게 틀림없다. 학부형의 꾹돈을 유도하려 교사가 아이 이마에 고무도장을 찍었다는 믿기 힘든 얘기도 있었지만 꾹돈 문제가 가장 많이 불거지는 건 정계와 공직사회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시 시(市) 의회 의장 선거 당시 시 의원 30%가 특정 후보에게 돈을 받았다는 가운데 지난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이가 장ㆍ차관 시절 관련 기업과 단체에서 근 1억원의 꾹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는 보도이고 보면 우리말의 걸태질(탐욕스럽게 재물을 마구 긁어모으는 짓)을 생각나게 한다.

문제가 된 전직 장관에 대해 새 정부의 표적 사정에 걸렸다는 시각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건 비슷한 위치에 있었거나 있는 공직자 모두를 잠재적 꾹돈 수뢰자로 여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미인계에 빠졌다는 게 면죄부일 수 없듯 설사 표적 사정이라도 그것이 동정의 사유가 될 순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일반인과 판검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양형에 대한 인식'을 보면 뇌물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범죄의 중대성' 면에서 살인보다 덜할 뿐 횡령 절도 사기보다 무겁다. 그런데도 구속률은 강도 강간 횡령 배임 뇌물 중 15.8%로 가장 낮고 집행유예는 60.3%로 가장 높다.

꾹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보여주는 셈이다. 툭하면 대가성 없는 떡값이라며 피해 가고 걸려도 구속 수감될 확률이 낮은 한 부패 척결과 비리 근절은 불가능하다. 뇌물에 대한 처벌이 수뢰액의 2~5배 벌금을 매길 수 있도록 강화됐다. 선거때 냉면 한 그릇만 얻어 먹어도 50배를 물어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5배도 적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