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채 < 고려대 겸임교수·정치학 >

한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분이 사석에서 김정일 체제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분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지방시찰 중이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려고 기차에 올랐다. 식사시간이 돼 당시 대남담당 총책임자와 단 둘이 식사를 하던 중 그가 김정일 위원장 이름을 말할 때마다 대남총책은 자리에서 벌떡 벌떡 일어나더란 것이었다. 단 둘만의 식사 자리였는데도 대남총책은 물론 자신도 식사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말은 김정일 치하의 북한이 얼마나 감시가 강한 강압체제요 독재체제인지를 절실히 느끼게 한다.

김정일은 그런 독재체제의 근간을 군을 통치 기반으로 하는,군을 우선시하는 선군정치에 두고 있다. 군을 통해 주민들을 통제하고,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로 한 협박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에너지 지원을 얻어내고 나아가 테러지원국의 오명까지 벗어나려 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도 더 지난 지금 피격 사건과 향후 남북관계 해법을 놓고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무더위에 속시원한 해법을 기대하는 국민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고 있다. 우리 정부의 진상조사 요구를 거부한 북한은 총격 시간을 조작하는가 하면 17세의 신참여군이 근무수칙을 경직되게 고수해 일어난 사건으로 내부적으로 당황해 한다는 말까지 흘리고 있다. 김정일은 지난 2002년 우리 장병 24명의 사상자를 낸 제2연평해전 때도 부하들이 한 행동으로 본인은 몰랐다고 한 것으로 국민의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임동원씨가 그의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김정일은 우리가 북한군의 지휘체계와 선군정치의 내막을 모른다고 보는가. 주민 300만명을 굶겨 죽이면서도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한 식량을 군인들에게 지급할 정도로 군을 철저하게 배려하고 있는 건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충격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크로싱에서 나오는 것처럼 임신한 아내의 결핵약이 없어 중국으로 약을 구하러 온 남편이 종내에 아내는 물론 어린 아들까지 죽게 하면서도 선군정치를 하는 것이 북한체제다.

김정일은 이제 말만이 아닌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유족과 대한민국에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통 큰 정치를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면적인 대북 대화를 제안하면서도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의무와 국민을 섬기겠다고 한 약속을 잊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국민우선정치를 펴야 한다. 그래야 주민의 생명을 우습게 아는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막을 수 있다. 국민중심의 정치만이 또 다른 남남갈등의 국론분열을 막고,온 국민이 함께 김정일의 반인권적 행태를 근절하고 국제적 협력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대의기관인 국회는 무고한 민간인을 죽인 북한에 엄중히 대처해야 한다. 국민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은 여당 원내대표가 '남북정치회담'을 하자고 말할 때가 아니다. 자유경쟁 선거로 구성된 국회의 의장이 불공정 선거와 김정일의 하수인이 모인 최고인민회의와 국회회담을 하자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국회는 오히려 북한에 대해 하루속히 철저한 진상조사에 응하라는 '진상조사 결의안'을 채택해야 된다. 그동안 북한에 우호적이던 민노당까지 북한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비난받고 있는 18대 국회가 처음으로 국민을 위해 단호한 대북정책 공조로 여야 '상생의 정치'를 편다면 국민도 국회에 희망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서울평화재단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