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가업승계는 미래다] (1) 늙어가는 창업세대‥ 후계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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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가업승계는 미래다] (1) 늙어가는 창업세대‥ 상속세 폭탄 … 후계자가 없다
경기 반월·시화공단에서 25년 가까이 금속도금업체를 운영해온 P대표(68).연매출 70억원에 대기업 거래처도 10개나 될 만큼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올라 있지만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것이다. 토목공학을 전공한 외아들은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딴 뒤 귀국하자마자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 버렸다. "어려서부터 맡은 화공약품 냄새가 싫다"는 게 그 이유다. P대표는 "자식이 귀국하길 2년을 기다린 게 아까울 뿐"이라며 "직원들만 없었으면 진작에 회사를 정리했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창업세대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후계자 낙점 문제로 딜레마에 빠졌다. 은퇴 시점은 코앞에 다가왔지만 맡길 사람이 마땅치 않은 처지다. 공장 땅값도 거품이 꺼지고 있어 사겠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창업1세대에 확산되는 '리타이어 버큠 신드롬'
◆2세경영+전문경영 투톱 저울질
2세 후계자와의 가치관 차이도 넘어서기 힘든 간극 중 하나다. 건설업체인 Y엔지니어링의 K대표(67)는 "교사를 하겠다는 둘째를 데려다 1970,80년대식 '접대문화' 매너를 가르쳐 줬더니 '부적절한 관계며 인정할 수 없는 비즈니스 방식'이라며 다른 사업을 하자는 반응이 돌아왔다"며 허탈해 했다.
◆"영원한 '을',물려줘봤자"
최근엔 "자식들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며 회사를 처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생고생 기업을 꾸려봤자 빚만 대물림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경기 안산의 금속에칭 업체 P사의 L사장은 "복잡하고 일방적인 대기업 하도급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납품 중소기업은 언제든 파리 목숨"이라며 "요즘은 노조의 요구도 점차 늘고 있고 각종 환경관련 규제까지 강화되고 있어 기회가 오는 대로 창업 멤버인 후배에게 물려줄 작정"이라고 털어놨다. 담보 한도까지 차버린 빚도 빚이지만 영원한 '을'인 중소납품업체의 멍에까지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사업을 접은 업계 사장 두 명과 함께 공장땅을 처분,러브호텔업에 진출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 "납품가 걱정도 원자재가 신경도 안 쓰고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순익이 나온다는데 그게 어디냐"는 게 L사장의 생각이다.
◆"차세대 리더 육성 시급"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조만간 감당키 어려운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와 정부가 적극 나서 중소기업의 안정적 영속을 뒷받침할 효율적인 승계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용 창출과 경영성과 측면에서 효율이 검증되고 있는 중소기업이 공동화될 경우 자칫 주요 기반산업의 미래까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관희 고려대 교수(중소기업학회장)는 "백년기업의 힘은 오랜 노하우와 신뢰를 바탕으로 악조건 속에서도 효율적으로 생존해 냈다는 것"이라며 "향후 한국 산업 100년을 책임질 차세대 중소기업 리더를 육성하는 데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