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부동산개발 업체인 신영의 정춘보 회장(53)은 아직도 숨을 쉬기가 불편하다. 한 달 전 산악자전거(MTB)를 타다 갈비뼈 2대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강원도 용평의 오대산 인근 내리막길에서 코너를 돌다 자전거가 미끄러지면서 가슴이 땅에 쿵하고 부딪쳤다. 너무 아파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10분 동안 '개구리처럼 쫙 뻗어' 있었다. 갈비뼈가 완전히 붙기 전까지 앞으로 한 달은 더 고생을 해야 한다고."산악자전거를 타다 사고가 나서 의식을 잃은 적도 있었어요.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출근해 직원들 보기가 민망하기도 했습니다만 자전거와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

실제로 그랬다. 갈비뼈에 금이 간 몸을 이끌고도 정 회장은 자전거에 올랐다. 수은주가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그는 지난 주말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급경사를 오를 때면 종아리가 바게트 빵처럼 단단해졌다. 정 회장이 자전거 페달을 밟은 지는 올해로 6년째다. 처음에는 LS전선 구자열 부회장(55)의 권유로 시작했다.

정 회장은 자전거를 타면서 인생과 사업을 배운다고 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습니다. 내려갈 때는 고통의 시간을 준비하고 오르막에서는 반드시 좋은 시절이 온다는 희망을 굳건하게 해줘요. "

정 회장은 "부동산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며 "언젠가 기회가 찾아올 때에 대비해 좋은 땅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않고 사둘 요량"이라고 말했다. 자전거가 그에게 가장 큰 재미를 주는 시간은 오르막길을 막 끝내고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산길을 자전거로 오르는 일은 굉장히 힘듭니다. 숨이 까딱까딱 넘어갈 정도로 낑낑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역경을 이겨낸 순간의 쾌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듭니다.

" 24년 전 주택 분양을 대행하는 일부터 시작해 자체 아파트 브랜드인 '지웰'을 선보이며 대표적인 개발업체(developer)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자전거로 산을 오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전거에 빠지다 보니 회사가 자전거대회를 직접 주최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시청에서 출발,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까지 18㎞를 도는 '종로구체육회장배 서울랠리'다.

해마다 열리며 올해 4회째다. 정 회장도 참가하는 이 대회 참가 인원은 1500여명.올해는 20일 열린다. 정 회장은 이 대회의 규모를 키워 세계적인 자전거대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내년쯤 '트랜스 알프스'에 참가하기 위해 맹연습 중이다. 구자열 부회장의 완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트랜스 알프스'는 8일 동안 알프스 산맥의 비포장도로 628㎞를 달리는 자전거대회다.

정 회장은 평소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자전거를 타지만 요즘은 빈도와 주행거리를 늘리고 있다.

'트랜스 알프스' 경주가 2인1조로 진행되기 때문에 파트너와 함께 맹연습 중이다. 파트너인 아이디디자인(디자인 업체) 박재현 사장(36)은 '끝장을 보고 마는' 정 회장의 성격에 혀를 내두른다.

박 사장은 "전날 과음을 했거나 심지어 몸살이 나더라도 연습에 나올 정도로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사실 갈비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은 것도 '트랜스 알프스' 출전을 위해 연습하다 그랬다.

동호회원들보다 먼저 와서 조금이라도 더 타보려는 욕심에 화를 당했다. 물론 정 회장은 사고 이야기를 쓰면 사람들이 자전거를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사에서 빼 달라고 은근히 요구(?)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모두 4대의 자전거를 갖고 있다. 이 중 2대는 산악자전거이고 나머지 2대는 일반 사이클이다. 가격은 대당 350만~600만원.1000만원이 넘는 고가 자전거도 많은데 의외였다.

티타늄으로 만들었다는 박재현 사장의 자전거는 1000만원이라고.정 회장은 "실력에 맞는 자전거가 좋은 자전거라고 생각한다"며 "잘 모르는 사람들이 기계값에 집착한다"며 웃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