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016.019 등 유지땐 보조금 못받아
휴대폰 고장나도 2G제품 구하기 힘들어

10년 넘게 011 번호를 써온 노윤호씨(43.서울 청운동)는 최근 고장난 휴대폰을 새것으로 바꾸려다 난관에 부딪쳤다. 찾아간 대리점마다 010으로 번호를 바꾸지 않으면 휴대폰을 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번호를 바꾸면 사업하는 데 고객관리 등에 어려움이 클까봐 걱정하고 있는 노씨에게는 휴대폰 교체가 진퇴양난의 문제가 됐다.

◆2세대 가입자엔 불이익

010 가입자가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011,016 같은 기존 식별 번호를 쓰는 가입자도 1646만명(6월 말 현재)으로 전체 가입자의 36.8%에 달한다. 011 번호를 사용하는 사람은 913만명(20.4%)에 이르며 016,017,018,019를 식별번호로 쓰는 가입자도 733만명(16.4%)이나 된다. 이들 대다수가 전화번호를 010으로 바꾸지 않고는 휴대폰을 교체하기 힘든 상황이다.

올해 들어 이동통신사가 출시한 휴대폰 가운데 010으로 번호를 바꾸지 않고 쓸 수 있는 2세대(G) 휴대폰은 약 20%에 불과하다. SK텔레콤은 올 상반기 32종의 휴대폰을 출시했지만 그 중 2G폰은 6종에 그쳤고 KTF가 선보인 20종의 휴대폰 중 2G폰은 2종뿐이다.

011 번호를 유지한 채 휴대폰을 바꾸려 할 때 이통사가 지원하는 보조금을 거의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비애' 중 하나다. 이통사들이 보조금 대다수를 3G폰에만 책정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3G폰은 공짜로 살 수도 있지만 2G 휴대폰은 30만~40만원을 줘도 구하기 힘들다. 이통사 관계자들이 "최근 쓸 만한 2G 휴대폰을 구해 달라는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소비자 선택권 제한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정부의 010 번호통합 정책 때문이다. 011 같은 식별번호가 SK텔레콤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브랜드(스피드 011)로 활용되자 정부는 모든 회사의 번호를 010으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011 등 기존 번호를 평생번호로 여기고 써온 사람에게는 번호 선택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지적도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년에는 시중에 나올 휴대폰 중 2G폰 비중이 10%대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는 "정부가 소비자에게 번호 변경을 강제하는 것은 사적 자산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통업계에서도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011 같은 번호를 3G 서비스에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통사 관계자는 "011 같은 번호를 3G 휴대폰에서도 사용하게 하면 차세대 서비스 확산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이제 와서 번호정책을 변경하면 기존 번호를 포기하고 010으로 이미 바꾼 사용자와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010 가입자가 전체 이동전화 가입자의 80%로 늘어나면 나머지 가입자의 번호까지 010으로 강제 통합할지에 대해 재검토한다는 원칙만 밝히고 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