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민 <연세대 교수·경제학>

최근 영국에서 발간되는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의 광우병 사태에 대한 심층 기사를 실었다.

새 정부의 '고소영''강부자',영어 몰입교육,대운하 같은 문제가 쌓여서 이번 사태로 분출됐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우리 입장에서 별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눈길을 끄는 것은 한.미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기사는 미국인 동아시아 전문가 랄프 코사의 이런 코멘트를 싣고 있다.

미국 쇠고기를 먹고 죽는 한국인은 없지만 한국 현대차 타다 죽는 미국인은 있다고.이번 파동은 한국인의 반미의식이 국내 정치에 이용된 것이라고.

이것은 물론 잘못된 인식이다.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것은 미국이 정한 자동차 안전 표준과 규제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그 표준과 규제에 대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반면 이번 쇠고기 협상은 한국이 쇠고기 안전에 대해 표준을 정하고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미국과 그 영향을 받는 국제수역사무국에 넘긴 것이다.

입장을 바꿔,한국에서 다들 현대차를 잘 타고 있으니 미국도 따로 표준을 정하거나 규제를 할 것 없이 믿고 타라는 식으로 협상을 했다면 미국인이 어떻게 반응했겠는가.

한국인의 반미의식 때문에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도 잘못이다.

인터넷을 통한 여중생들의 모임이 시발점이었던 사태가 반미의식 때문이었겠는가.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지도층도 미국에 대해 비판적일지는 몰라도 반미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미국인 중 코사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는 한국인의 문제 제기가 정당하다고 보고 미국 검역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문제는 크루그먼보다 코사 같은 미국인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크루그먼 같이 예리한 지식인이 많지 않은 데다,미국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비대칭성이 존재한다는 근본적 문제도 있다.

한국인이 미국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 미국인이 한국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일 초강국으로서 미국은 전 세계 수백 개 나라를 상대해야 하고,냉전이 끝난 시점에서 한국은 '혈맹'이 아니라 그 수백 개 나라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여건 하에서 미국인의 대한(對韓) 인식은 단순화.추상화되기 마련이다.

한국인이 검역 주권 포기는 안 되지만 반미(反美) 할 생각은 없다고,미국에 비판적이지만 반미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미국인은 훨씬 더 단순하게 추상화해서 본다.

그런 구도 속에 광우병 파동은 결국 대다수 미국인에게 반미로 비쳐지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괘념치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물론 이런 것들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한국 같은 복잡한 지정학적.지경학적 상황에 처한 나라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광우병 사태가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됐지만 사후적으로 지도부가 형성됐다.

지도부는 단순 참여자와 달리 이런 복잡한 문제도 생각했어야 하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여당,그리고 일부 언론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촛불의 온갖 원인을 제공해 놓고 그것을 반미의식 탓으로 돌리는 것이야말로 반미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함으로써 외국인으로 하여금 촛불을 반미로 보게 하는 데 일조(一助)했다면 정말로 곤란한 일이다.

광우병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 해결책은 각자가 자신의 책임을 깨닫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광우병 사태의 현명한 해결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