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주재하는 외국 특파원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홋카이도 방문 초청을 받았다.

이달 7~9일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 사전 취재 요청이다.

지난해 8월 이후 일본 외무성 등이 외신기자를 초청한 프레스투어(취재 출장)만 지금까지 8번,참여 기자는 104명에 달했다.

도쿄에 있는 웬만한 외국언론사 특파원들은 한 번씩은 다녀온 셈이다.일본 정부는 홋카이도 G8 정상회담에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왔다.

회원국들이 매년 돌아가면서 여는 G8 정상회담을 일본은 왜 이처럼 언론에 '띄우려' 할까.

이유는 이번 G8 회담이 일본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어서다.

이번 회담은 향후 30~40년을 좌우할 새로운 국제 환경 규제틀을 사실상 결정짓는 자리다.

2008~2012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한 교토의정서 이후 2050년까지의 중장기 목표를 설정하는 게 핵심 의제다.

일본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새로운 규제 틀이 홋카이도에서 정해진다는 데 고무돼 있다.

지금의 규제 틀인 교토의정서도 1997년 12월 일본의 천년고도 교토에서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지구적 환경규제 논의의 변곡점은 늘 일본에서 이뤄졌다.

이런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겠다는 게 일본의 계산이다.

그렇지 않아도 깔끔한 국가이미지에 '환경'까지 얹어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일본=친환경'이란 인상을 심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어느 나라보다 앞서 지난달 초 "2050년까지 일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보다 60∼80% 줄이겠다"고 선언하며 선수를 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들이 장단을 맞추고 있는 건 물론이다.

1997년 '프리우스'란 모델로 하이브리드카를 세계에 선보인 도요타자동차 와타나베 가츠아키 사장은 "이젠 달릴수록 공기가 맑아지는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혼다는 무공해 수소 연료전지차를 최근 양산하기 시작했다.

미쓰비시자동차는 전기자동차에서 앞서가고 있다.

소니 마쓰시타전기 산요 신일철 등 내로라 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올해 신년사 화두도 모두 '환경'이었다.

1970~80년대 일본 제품은 '품질'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소니 TV,도요타 '캠리'는 고장 안 나기로 유명했다.

무결점 운동,'카이젠'(개선) 등 철두철미한 품질관리(QC)는 세계인의 머릿속에 '메이드인 저팬=고품질'이란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은 '품질'을 바탕으로 태어났다.

이제 일본은 '환경'에 승부를 걸고 있다.

21세기엔 나라와 제품 모두에 '환경'이미지를 심어 '메이드인 저팬=친환경'으로 변신하려 한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더라도 환경을 무시하면 만들지도,팔지도 못하게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목표는 세계 1위 경제대국인지도 모른다.

일본은 '환경'으로 미래를 대비하는데,한국은 무엇으로 미래를 맞을까.

지구적 환경 규제란 새로운 게임 룰엔 대처할 준비가 돼있나.

한국 기업은 어떤 이미지로 세계인들에게 물건을 팔아 먹고 살 것인가.

지금 온 나라가 '쇠고기'와 '촛불 시위'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