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이행 사실상 완료..'관제탑 없는 비행' 내부 우려

지배구조 변화.차명계좌 처리 '미완의 과제' 지적도

삼성이 25일 이건희 회장 완전퇴진, 전략기획실 해체, 투자조정위원회.브랜드관리위원회를 산하에 둔 사장단협의회 가동을 뼈대로 한 '4.22 쇄신안' 후속조치를 내놓으면서 사실상 쇄신안 실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미 예고된 수순이라고는 하지만 이날 조치의 핵심은 무엇보다 전략기획실 해체에 따른 자율.독립경영체제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맞물려 이 회장의 최측근으로서 그룹의 '2인자'로 통해온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과 김인주 전략지원팀장(사장)의 퇴진도 삼성 권력지도의 재편이라는 맥락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경영권 편.불법 상속.승계 논란에 닿아있는 삼성 재판 진행과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삼성에 또다시 큰 고민을 안길 가능성이 있는 지배구조 변화, 2조원 안팎을 헤아리는 이 회장 차명계좌(재산) 처리 해법은 여전히 뉴삼성 행로의 굴곡을 가늠할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삼각편대'없는 독립경영 명암과 앞날은 = 삼성 내부에서는 회장-전략기획실-각 계열사 CEO를 삼각편대로 부르며 이런 삼각편대 경영체제가 '글로벌 삼성'의 경쟁력을 키운 핵심 요소였다고 자평해왔다.

회장이 삼성호를 이끄는 선장이라면, 전략기획실은 조타수이며, 각 계열사 CEO는 항해사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삼성은 이번에 이 회장이 완전퇴진한 데 이어 전략기획실이라는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외견상 삼각편대의 두 축을 잃었다.

이는 곧 독립경영체제로의 '도전적' 전환이 시작됐음을 뜻한다.

삼성은 4월 쇄신안 발표 때 각 계열사의 독자 경영역량이 확보돼있고, 사회적으로도 그룹 경영체제에 대해 일부 이견이 있는 점을 감안해 전략기획실을 없애기로 했다고 하면서 향후 각 계열사 CEO 등으로 구성되는 사장단협의회를 가동키로 했다고 밝혔고, 이날 그 약속을 7월부터 실행하겠다는 그림을 내놨다.

삼성은 이에 따라 각 계열사 CEO 중심의 자율.독자경영을 기본으로 하되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계열사 간 업무 협의와 비즈니스 정보공유를 해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사장단협의회 아래에는 투자조정위원회와 브랜드관리위원회를 양 날개로 두고 계열사 간 투자 조정과 '삼성' 브랜드의 통일성 유지와 가치제고, 사용, 관리 문제를 다뤄나가기로 했다.

두 위원회의 수장은 각각 삼성전자 이윤우 부회장과 이순동 사장이 맡았다.

그간 전략기획실이 해왔던 그룹 단위의 장기 경영비전 설정과 계열사 간 중복사업 방지, 대규모 투자 조율, 사업구조 조정, 자원 배분, 인사 정리 등이 어려워지면서 삼성의 경쟁력이 꺾일 것이라는 분석이 있어온 데 대한 삼성의 처방전인 셈이다.

특히 투자조정위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외에 김순택 삼성SDI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이상대 삼성물산 사장, 임형규 삼성전자 사장,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 등 6명이 위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신사업 추진, 유사.중복사업 조정 등을 논의하기로 하면서 그룹경영 해소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들 멤버가 삼성 현장 비즈니스의 파워그룹을 형성할 것이라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여기에 사장단협의회 직속으로 업무지원실이라는 스태프 조직을 꾸려 사장단회의를 실무 지원하고 대외적으로 삼성그룹의 창구와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그동안에도 이건희 회장이 경영 전면에 서서 칼자루를 쥐고 진두지휘하는 장수형 오너경영자 스타일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외견상의 이런 체제 변화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경영시스템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지 않는 시각도 엄존한다.

사장단협의회가 가동되지만 어느 한 두 명의 인물에 의해 그룹의 의사결정과 지배력이 좌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대주주로서의 영향력이 지금과 180도 달리 크게 약화될 것으로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에서다.

한편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이미 공언한 대로 고문과 상담역으로 각각 물러남으로써 이건회 회장의 오너경영을 보좌해온 중심세력의 분명한 퇴조를 알렸다는 해석도 낳고 있다.

◇ 미완의 과제와 뉴삼성의 행로는 = 삼성은 4월 쇄신안 발표 당시 10가지를 약속했었다.

이 가운데 이건희 회장 퇴진, 부인 홍라희 씨의 미술관장 등 대외 공식직함 사임, 아들 이재용 씨의 삼성전자 최고고객책임자(CCO) 사임과 해외현장 근무 등 오너 일가의 거취는 모두 정리됐다.

또 삼성화재 황태선 사장과 삼성증권 배호원 사장 사임,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의 '삼성' 대외업무 대표 역할도 이행되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이날 발표를 계기로 이달말로 시한을 정한 전략기획실 해체, '잔무 처리후' 사임한다는 시간표를 제시한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등 최고위 임원의 거취 정리도 종지부를 찍었다.

따라서 이제 남은 문제는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처리, 사외이사 선임 개선, 순환출자 해소 등 세가지로 요약된다.

차명계좌 처리는 이 회장과 삼성의 오너경영 도덕성에 닿아있는 문제로서 이 회장은 쇄신안 발표때 특검에서 조세포탈로 문제가 된 차명계좌를 실명전환을 거쳐 누락된 세금 납부후 개인과 가족 이익이 아니라 유익한 일에 쓰는 방안을 찾겠다고 했었다.

이 회장은 이런 약속에 따라 이미 납부한 양도세 이외에 상속세까지 규모가 확정되고 나면 납세 절차를 마무리한 뒤 다각도의 용처를 고민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용처가 언제쯤 결정될지는 예단하기 힘들다"고 말해 시간이 다소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사이외사 선임 이슈는 금융계열사를 중심으로 직무상 연관이 있는 사외이사를 앞으로 선임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서, 삼성은 생명 등 각 금융계열사 대표이사 등이 내년 3월 주주총회와 이사회 등 법적 기구의 의사결정을 거쳐 반드시 이행하게 될 것이라고 삼성 고위관계자는 확인했다.

이렇게 되면 주요 금융계열사 사외이사진의 물갈이와 함께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가 강화되는 흐름이 가속화될 것으로 삼성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지배구조와 관련해 순환출자의 핵심고리 가운데 하나인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보유주식(25.64%)을 4-5년내 매각하는 수순을 밟겠다는 로드맵에 대해서는 앞으로 사장단이 검토해나갈 문제라고 삼성은 전했다.

사실 이 주식 매각은 작년 8월 개정, 시행된 금산법 규정을 의무적으로 이행하는 수순이다.

개정 금산법은 금융회사가 취득한 동일 기업집단내 비(非)금융 계열사 주식 가운데 5% 초과분에 대해 1997년 3월 이전 취득분은 2년 유예뒤 의결권을 제한하고, 그 이후 취득분은 즉각 의결권 제한과 함께 5년내 자발적으로 매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은 그러나 경영권 승계 논란 등에 맞물려있는 작금의 '삼성 재판' 진행 결과에 따라 지배구조 변화라는 숙명적인 숙제와 다시 맞닥뜨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않다.

그 경우 삼성은 개정 금산법에 따른 순환출자 주식 매각 등 '의무사항' 이외에 예컨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나 계열분리 등과 같은 질적인 지배구조의 변화 요구를 수용해야 할 처지에 몰리거나, 이건희 전 회장에서 이재용 전무로 넘어가는 경영권 상속.승계구도에도 변수가 닥칠 수 있다는 견해도 없지않다.

하지만 삼성 안에서는 이 회장에서 이 전무로의 경영권 이양구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무가 삼성전자 고객총괄책임자 자리를 내놓고 해외사업장 투어에 나서는 것으로 일단 경영과 외부 여론의 중심권에서 벗어난 채 경영수업 제2라운드를 치르는 동시에 비즈니스 안목을 키워나가려 하고 있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또한 삼성은 지주회사 전환에는 20조원 가량의 돈이 들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문제점을 내세우면서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시간을 두고 검토해야할 사안으로 정리하면서 이 문제를 '후순위'로 밀어둔 상태이기 때문에 지주회사 전환 이슈도 당분간 잠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