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와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베트남 정부가 국영 기업의 신규 투자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국영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에 브레이크를 걸고 시중에 풀리는 유동성을 줄여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자는 의도다.

이에 따라 베트남 국영 기업과 손잡고 대규모 투자를 추진했던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은 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발목 잡힌 베트남 공기업 투자

23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물가를 잡기 위해 공기업의 신규 투자를 금지하거나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가시적인 첫 번째 조치는 베트남 국영 조선업체인 비나신그룹에서 시작됐다.

이날 비나신그룹은 포스코와 공동으로 베트남 반퐁만 지역에 일관제철소를 짓기로 했던 계획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당초 비나신그룹이 50억달러로 예상되는 투자금액 가운데 10억달러를 대기로 약속했었다"고 전했다.

비나신그룹의 팜 탄 빈 회장은 "포스코 제철사업 외에도 40여개의 사업을 중단하거나 연기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작년 5월 비나신그룹과 일관제철소 건설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투자금액 중 일부를 비나신그룹이 대고 항만건설 등을 포함한 일관제철소 공사를 함께 추진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포스코가 계획 중인 일관제철소는 연산 400만t 규모로 완공 예상시점은 2013년이다.

포스코는 이달 초 일관제철소 타당성 검토 자료를 베트남 정부에 제출했으며 올해 안에 사업허가를 받은 뒤 내년 4월에 첫 삽을 뜰 예정이었다.

◆수술대 오른 베트남 공기업


베트남 정부는 공기업의 신규 투자 금지를 신호탄으로 전면적인 공기업 개혁에 나설 방침이다.

이날 미국 방문길에 오른 응우옌 떤 중 베트남 총리는 월스트리트저널과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국영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과 개혁은 베트남 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핵심과제 중 하나"라며 "인플레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 있는 국영 기업들을 쇄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국영 기업들이 은행에서 무리하게 대출 받아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베트남 국영 기업의 대출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베트남 현지 은행의 대출 증가율이 54%(전년 대비)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베트남의 지난 5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25.2%까지 치솟았다.

1992년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베트남은 그동안 대기업을 국가경제의 축으로 육성한 한국식 성장모델에 영향을 받아 국영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저금리로 지원해 왔다.

그러나 페트로베트남과 베트남전력 비나신 등 베트남 경제를 대표하는 국영 기업들은 이 같은 특혜를 등에 업고 본연의 업무는 뒤로 한 채 '돈 되는 사업'에만 열을 올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꼬집었다.

베트남 조선업체인 비나신은 금융과 증권업은 물론 양조업 철강업까지 손댔다.

저널은 "베트남 경기는 국영 기업을 통해 흘러나온 자금과 밀려드는 외자 탓에 과열로 치닫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스코 베트남 투자 차질 빚나

비나신그룹이 투자 결정을 철회함에 따라 포스코도 일관제철소 사업계획에 대해 어느 정도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그러나 "비나신그룹의 결정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전체 사업 추진일정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나신그룹의 도움 없이도 자금을 조달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사업을 추진하는 데 운신의 폭이 넓어져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포스코 정도의 능력이면 베트남 제철소 사업을 충분히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다"며 "베트남 정부의 간섭이 줄어들어 사업추진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동안 비나신그룹은 베트남의 교통성에 소속돼 있고 철강산업은 공업성 관할이어서 의사결정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안재석/오광진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