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9일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또 반성문을 썼다.

취임 116일 만이다.

국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머리를 숙인 것은 지난달 22일 대국민 담화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대통령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한 달도 안돼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사과를 계기로 '쇠고기 국면'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확 바꾸겠다는 의지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뒷산에서 아침이슬 들어"


회견은 감성적으로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지난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다"며 "'아침이슬' 노래도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 행렬을 보면서 늦은 밤까지 수없이 제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고 말했다.

쇠고기 파문으로 촉발된 성난 민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타개책 마련을 위해 고심을 거듭했다는 뜻이다.

이런 때문인지 기자회견에서 밝힌 반성의 강도는 여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달 대국민 담화에서는 "국민께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수준이었는데,이번엔 "제 자신을 자책했다"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는 등 보다 직설적인 표현을 썼다.

또 "돌이켜 보면 대통령에 당선된 저는 마음이 급했다"며 "아무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챙겨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실제 취임 초 "좌고우면 하지 말라,너무 늦다,빨리 하라"고 공직자들을 다그치는 게 다반사였다.

속도전이 일종의 '이명박 코드'였을 정도다.

이 때문에 이날 회견에서 이 같은 발언들은 자신의 국정 운영 스타일과 리더십의 변화를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과 함께 가겠다"고 강조했다.

'일방통행'식에서 벗어나 국민의 뜻을 잘 살피는 등 '좌고우면'하겠다는 뜻이다.

조각 파문에서부터 쇠고기 파동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논란들이 국민의 바람을 무시한 채 국정을 일방적으로 운영한 데서 비롯됐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두 달 만에 맞은 이번 일(쇠고기 파문)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재임 기간 내내 되새기면서 국정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난국 타개 될까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쇠고기 파문으로 악화된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 운영을 정상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넘버원 공약이던 '한반도 대운하' 포기 가능성을 내비쳤고,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는 것은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만큼 국민들도 어느 정도 납득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이미 청와대 참모들의 대폭 교체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그러나 쇠고기 파동이 쉽사리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야당과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여전히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쇠고기 추가 협상이다.

그 결과가 국민들의 요구 수준에 미흡할 경우 촛불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