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고 저희 집으로 오실래요? 중국차(茶)나 마시면서 얘기 나누시죠."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재식 대표변호사(57·연수원 13기)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이 대표는 '찻방(茶房)'으로 안내했다.

"작년에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방 하나를 차를 즐기기 위한 공간으로 꾸몄어요."

찻방은 꽤 그럴싸했다.

이 대표가 수집한 중국 민화와 병풍,다기(茶器),각종 골동품 등이 어우러져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는 음악을 틀었다.

가수 김수철씨의 아쟁과 피리 연주곡이었다.

정좌를 하고 찻상을 가운데 둔 채 이 대표와 마주앉았다.

"우리가 마실 차는 중국 보이차입니다. '7542'와 '이무춘첨(易武春尖)'이에요. "

보이차는 중국 윈난성 남부지방에서 생산하는 발효차의 일종이다.

독특한 향과 색이 특징이라고.종류만 해도 220여 가지가 넘는다.

그는 "'7542'는 1975년에 생산된 차입니다. '42'는 차를 생산한 공장 번호를 뜻합니다. 이무춘첨은 한자 뜻 그대로 봄에 딴 여린 잎으로 만든 차이지요."

물이 끓기 시작하자 그의 손길이 바빠졌다.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다기를 꺼내겠습니다."

흔히 보기 어려운 찻주전자였다.

몇 해 전 한 골동품상에게 구입한 것인데 200년 이상 된 일본산이란다.

"자,이제 음미해 보시죠."

이 대표는 다소 뜨거운 보이차를 한숨에 들이켰다.

그가 중국차에 입문한 것은 아내 덕분.10년 전 친구들과 중국 베이징으로 여행을 갔던 아내는 생소한 중국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다. 토사곽란이 꽤 심했다. 일행 중 10명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중국 보이차를 마신 4명만 멀쩡했다. 차의 해독 작용 덕분이었다.

"이후 아내는 중국차 마니아가 돼 있더군요. 저도 얼결에 아내와 함께 중국차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차 전문가에게 4년간 개인교습을 받았다.

중국차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국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됐다.

좋은 차를 구입하기 위해 중국에 자주 드나들었다.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의 딸도 합세했다.

"이젠 제 딸이 차를 더 좋아합니다. 맛만 보고도 차 종류를 대충 맞힐 정도라니까요."

차 수집도 열심히 했다.

보이차 19종,청차 10종 등 항아리 가득 모았다.

그가 중국차에 입문한 1999년에는 찻값이 그리 비싸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올랐다.

그때 100g에 20만원이던 보이차가 지금은 100만원 선이란다.

벌써 여섯 잔째다.

그는 "일곱 잔을 마시면 좀 쉬어야 한다"며 "몇 시간 차를 음미하면 땀이 나면서 주위에서 맑은 바람이 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중국차를 마신 이후로 크게 아픈 적이 없다.

"소변 색깔이 투명해지더군요. 저는 '똥배'도 안 나왔어요. 피부도 깨끗한 편입니다."

중국차는 평생을 함께 하고픈 취미라는 그는 법조계에서 차를 같이 즐길 만한 친구가 없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머릿속을 정리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최고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중국차 외에 국선도와 골동품 수집을 즐긴다.

법조계에서 그는 이미 '성공한 변호사'다.

1983년 공동 설립한 법무법인 '태평양'은 국내 2위의 로펌으로 자리잡았다.

망원동 수재 사건,신한투금 주식반환 사건,샘물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얼마 전 법무연수원을 빌려 사내 체육대회를 열었다"며 "3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이제 600명으로 늘어나 운동장을 가득 채운 걸 보니 목이 다 메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국내 로펌으로는 처음 유한 법무법인 형태로 회사를 전환했다.

이 대표는 "기초체력은 닦아놨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한 시간 예정이던 인터뷰는 어느덧 세 시간 반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퇴근하고 차를 홀짝거리다 향기에 취해서 밤을 지새우는 날도 종종 있습니다. 신선놀음이에요."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