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문화제가 2일로 한 달째를 맞았지만 시민들과 정부의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정부가 졸속협상으로 국민건강권을 희생하려 한다는 생각으로 서울 청계광장에 공론의 장을 열었지만 행사는 1개월이 지난 현재 `반정부 투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상황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달 들어 시민들이 대규모로 운집하는 굵직한 행사들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 과격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 및 그에 따른 불상사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문화제→거리행진→청와대 진입시도 = 5월 2일 처음으로 시작된 촛불 문화제는 중ㆍ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광우병 발병을 막자는 취지의 조용한 행사였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시민단체의 후원금으로 구입한 양초를 나눠주고 철거민들로부터 연단을 빌려 마련한 자리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들이 자유발언을 쏟아내는 자리였다.

하지만 열흘 전인 5월 24일 밤 시민 3천500여명(주최측 추산 2만명)이 "청와대로 가자"며 종로와 세종로 일대 거리를 점거하고 경찰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면서 문화제의 성격은 거리시위로 돌변했다.

`성난 민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정부와 치안당국의 강경대응 방침에 대한 반감이 거세지면서 `반 정부' 정서가 강하게 표출됐으며 급기야 5월 29일 쇠고기 수입 고시 발표를 기점으로 시위는 점점 과격화했다.

29일 저녁 촛불집회의 규모는 그간 최다인 1만명(주최측 5만명)을 넘어섰으며 대학생들이 집중 가세한 31일과 1일에는 각각 4만과 2만명(경찰추산. 주최측 14만명)이 집결해 일부는 밤을 새워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다.

시민들은 세종로 일대에서 청와대의 진입로를 가로막은 전경버스를 줄로 묶어 잡아당기고 유리창을 깨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이에 맞선 경찰은 시위대에 물대포를 분사하고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 왜 악화되나 = 상황이 점점 악화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정부가 국민의 메시지를 경청하지 않는 데 있다고 시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시위에 참여했던 서모(34.자영업)씨는 "우리가 애초에 요구했던 건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졸속협상을 시인하고 재협상을 하라는 것일 뿐이었다"며 "그런데 정부는 계속 본질에 어긋난 딴 소리만 했고 언론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폄훼하는 말만 흘려댔다"고 비난했다.

촛불 문화제가 이어지는 와중에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발표했으나 시민들은 오히려 격앙했고 그런 와중에 고시가 강행되자 반감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경찰과 일부 보수단체 등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놓은 `문화제 배후설'도 자발적으로 나온 시위대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경찰의 시위자에 대한 무분별한 연행, 특공대 투입, 물대포 사용, 전의경의 과잉 대응 논란 등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시민단체들은 분석했다.

시위에 참여한 이모(28.여.취업준비)씨는 "먹을거리의 문제로 지난 한 달 동안 문화제에 참여했지만 그 와중에서 현 정부에 너무 실망했다"며 "정부의 반응들은 하나같이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리자는 뜻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 대규모 행사 줄줄이 = 시민들의 반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시민들이 대규모로 운집할 가능성이 있는 굵직한 행사들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오는 10일에는 1987년 6월 민주화투쟁 21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리고 13일 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ㆍ미선양의 6주기 기념식이 예정돼 있다.

15일은 6.15선언 8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공기업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노동계의 움직임도 매년 이때쯤 시작되는 하투와 맞물려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다.

7월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당사자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답방이 예정돼 있어 거리시위가 그전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높아진 시민 의식을 고려할 때 과거 1980-90년대 쇠파이프와 화염병, 돌멩이와 최루탄이 난무하는 상황까지 내몰리진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지만 일각에서는 과격한 물리적 충돌이 계속된다면 돌발 행동에 따른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