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지는 성장률,치솟는 물가,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계속되는 경상수지 적자…. 국내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다.

먹구름의 종류가 제각각이고 접근해 오는 방향도 달라 어느 쪽에 맞춰 대책을 세워야 할지 결정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가 나쁘고 일자리가 줄어들면 소비자물가가 떨어지고 수입이 줄어야 하는데,이번에는 어찌된 일인지 물가가 폭등하고 해외수입마저 급증하고 있다.

1970년대 전세계를 강타했던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국내 경기의 사이클이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는 거의 모든 경제연구기관들이 동의하고 있다.

삼성 LG 현대 등 민간 연구소뿐만 아니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도 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

올 들어 새로 생기는 일자릿수(전년동기비)가 20만개를 밑돌 정도로 취업난은 심각하다.

경기가 나쁜 데도 소비자물가가 4%를 넘어설 만큼 물가불안이 확산되는 것은 원유를 포함한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 때문이다.

고유가 등의 여파로 수입물가가 오르고,원자재와 중간재 등의 물가가 순차적으로 상승하며,이것이 시차를 두고 최종소비재 가격에 반영되면서 소비자물가가 계속 치솟고 있다.

연구기관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등이 석유 증산에 소극적인 데다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국의 개발수요 증가로 석유소비가 급증해 국제유가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경제가 고물가 시대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수입물량이 예전과 같더라도 단가가 오르는 만큼 수입액이 늘어나고,이로 인해 무역적자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환율이 더 올라 물가에 부담을 주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국내 경제는 성장률이 5%에도 미달하고 물가는 4%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서민들은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아 생활고가 가중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경제가 난국으로 빠져들고 있는데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정부가 경기에 대응할 수 있는 마땅한 정책수단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실물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인하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시중자금이 늘어나 물가불안이 더 확산될 수 있다.

물가불안을 차단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실물경기를 위축시켜 고용사정이 악화될 수 있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내수경기 침체를 수출로 만회하기 위해서는 환율을 높게 유지하는 정책이 필요한데,이 경우 원화로 환산한 수입물가가 큰 폭으로 올라 소비자물가가 더 오르게 된다.

내수 위주의 기업들은 수입 원자재 가격상승에 따른 원가부담을 이겨내기가 어렵다.

재정확대 정책을 쓰는 것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의 철학을 감안하면 쉽지 않다.

추경예산을 편성하려던 기획재정부의 계획은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일단 무산됐다.

6월 국회에서 다시 논의한다는 계획이지만 어찌될지 장담하기가 어렵다.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물가상승 부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금을 깎는 데는 전반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세법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일시적인 세수증가분을 감세재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경제전문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물가불안 심리가 확산되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세밀한 정책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내수가 위축되고 있는 만큼 추경예산 편성 등을 통한 경기진작의 필요가 있다"며 "이와 동시에 물가불안 심리를 차단하기 위해 환율이 하향안정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 인하는 물가불안 때문에 바로 선택하기가 어려워졌다"며 "환율과 물가를 보면서 정책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추경예산 편성은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만 물가상승과 부동산시장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세금을 인하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며 감세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내수 경기가 좋지 않지만 환율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에 도달했고 유가도 많이 오른 만큼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금리보다는 재정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