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모란 지던 시절

그 시절 시들듯 시들어갔네

꽃 같던 모습

뚝뚝 지는 꽃처럼

빗방울 후드득 떨어지고

하늘은 다시 맑았네

뒷산 불던 바람 자연하고

흰 구름 둥둥 여여하였네

그 시절 시들듯 그도 시들어갔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네

꽃잎만 한 잎

뚝! 떨어졌을 뿐

박찬 '그 시절'전문



꽃처럼 빛나던 그가 시들어 간다.

눈가에 주름이 지고 피부는 탄력을 잃었다.

흐릿한 눈으로 느슨하게 세상을 본다.

그런데도 변함없이 해가 뜨고 바람이 분다.

비가 오고 하늘은 다시 맑아진다.

믿을 수 없다.

그가, 또 내가 이렇게 시들어 가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

저쪽에서 백모란 꽃잎만 툭 떨어질 뿐이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생이 저물어 간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