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15일 오전 8시께부터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한국석유공사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대검 중수부가 12일 한국전력ㆍ산업은행ㆍ한국석유공사ㆍ한국가스공사ㆍ한국도로공사ㆍ한국토지공사ㆍ대한주택공사 등 7개 중점 수사대상을 포함해 20여개 공기업 비리에 대한 전방위 수사방침을 밝힌 후 석유공사가 '재계 저승사자'의 첫 타깃이 된 셈이다.

검찰은 석유공사 임직원이 업무추진 과정에서 관련 기업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거나 수십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제보를 받고 내사를 계속 진행해왔다.

검찰은 이날 오전 재무처ㆍ신규사업처ㆍ개발운영본부 등 자금운영과 해외사업에 관련된 부처를 상대로 각종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석유공사가 압수수색을 당하기는 1979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최근 3일 동안 산업은행 대출비리와 관련된 그랜드백화점과 한국증권선물거래소,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이어 네 번째 검찰의 압수수색이 실시되자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공기업들은 '다음 차례가 누구냐'며 당혹스런 분위기다.

공기업들은 이번 검찰 수사가 공기업 구조개편을 앞둔 상태에서 공기업 전반의 도덕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지면서 기관의 역할과 조직이 축소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공기업 한 관계자는 "석유공사마저 압수수색을 당하면서 한전 등 다른 공기업들이 모두 일손을 놓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선물거래소의 PC와 데이터베이스(DB)에 대한 압수수색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계속됐다.

전날 압수수색 대상은 기획ㆍ인사ㆍ시스템 등 이정환 이사장이 담당했던 부산 경영지원본부 쪽에 집중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증권거래소의 방만한 예산편성과 집행뿐 아니라) 업무 추진과정에서 임직원들의 횡령이나 배임 등 혐의가 있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거래소 한 임원은 "새 이사장이 취임한지 두 달이 채 안된 상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무척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산은 역시 그랜드백화점 외 다른 기업체에 대한 대출비리로 검찰 수사가 확대될지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캠코도 이철휘 사장이 정부로부터 재신임 결정을 받은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압수수색이 이뤄져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캠코 임직원들은 또 이번 검찰 수사가 자칫 채권 회수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받는 리베이트 수수가 공사차원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졌는지를 따질 경우 수사 결과에 관계없이 상당한 후유증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캠코 관계자는"이번 사건은 회사 차원의 문제가 아닌 개인 혐의"라며 회사 운영시스템과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한편 캠코와 관련해 검찰은 부천 소재 국내 최대 실내 스키장 운영업체인 T사의 대표 도모씨를 전날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이날 밝혔다.

검찰은 캠코가 2005년부터 2007년 사이 부실채권의 담보수단으로 갖고 있던 제3의 회사 주식을 도씨에게 20억~30억원에 매각(특경가법상 배임)한 후 도씨가 1년6개월 후 이를 약 270억원에 처분하는 과정에서 리베이트가 오고 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T사의 운영기업 E사의 사무실도 전날 압수수색해 관련서류 등을 분석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담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정확히 얼마나 이득을 취했는지는 아직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전날 체포한 캠코 관련 직원 2명과 도씨에 대해 16일 오전까지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