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빔 이브라힘 알 나이미 석유장관(73)은 15일 "국제유가 불안은 수급보다는 금융시장의 내부 논리와 관련이 깊다"며 "유가가 배럴당 17달러 수준이던 1990년대나 120달러대를 넘은 지금이나 석유 공급은 전세계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에서 명예박사 학위(철학)를 받기 위해 이날 방한한 알 나이미 장관은 서울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데 대해 "석유시장의 펀더멘털보다는 금융시장의 급성장 때문"이라고 지적,최근 미국의 증산 요구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사우디의 석유자원부 장관을 세차례 연임하며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회장직도 맡고 있는 그는 세계 석유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에너지계의 그린스펀','사우디의 석유 대통령'으로 불린다.

알 나이미 장관을 만나 유가 전망 등을 들어봤다.

―에너지 고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급성장하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석유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석유 소비는 2030년까지 하루 2000만배럴 수준으로 늘어나 전세계 수요 증가 예상치의 6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산유국의 생산량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 석유 매장량은 1980년대 확인됐던 6670억배럴의 두 배 수준인 1조2000억배럴이다.

사우디 등 주요 산유국들이 꾸준히 유전을 개발하고 생산능력을 확대한 결과다.

중동 국가들은 앞으로 아시아 석유 수요 증가분의 80%가량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는 900억달러를 투자해 내년 말까지 석유 생산을 하루 1250만배럴로 늘릴 계획이다."

―현 유가 수준은 적절하다고 보나.

"금융시장의 급성장으로 가격 변동폭이 커졌다.

최근의 유가 급등은 특히 약달러 추세에 따라 상품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된 데 기인한 것이다.

또 생산과 정제 원가의 상승,관련 인프라의 병목 현상 같은 문제도 유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국과 소비국이 원유 개발과 수송,정제 등과 관련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베네수엘라 등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는데.

"세계 수급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소비국과 생산국이 만나 관련 현안을 논의하는 국제에너지포럼(IEF)을 부활시키고,유가가 오를 때 원유 생산량을 늘려 유가 안정에 기여하는 등 자국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는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

―한국을 어떻게 보나.

"열정적이고 윤택한 문화와 경이적인 경제 발전을 해온 한국인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대에서 학위를 받게 돼 정말로 명예롭게 생각한다.

'뿌리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양국 간 교류가 지속적으로 번창하기 바란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