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문구가 퍼진 적이 있다.

움직이는 게 어디 사랑뿐이랴.시간은 진리나 상식,심지어 낱말의 뜻까지 바꿔놓는다.

'엽기적'이 '괴이하고 끔찍한' 대신 '기발한''독특한'으로 쓰이고,'발칙한' 역시 '버릇 없고 막돼 괘씸한'이 아닌 '기발하게 깜찍한'으로 통용된다.

유행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 말도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걷잡기 어렵다.

툭하면 오르내리던 '엽기적'이 시들해지고 '발칙한'이 뜨더니 근래엔 온갖 것에 '착한'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착한 몸매'부터 '착한 가격''착한 고기' 운운하는가 하면 '착한 자본''착한 사랑'도 있다.

몸매가 착하다는 건 이른바 '쭉쭉 빵빵' 날씬하다는 얘기고,가격이 착하다는 건 품질 대비 값이 적절하거나 저렴하다는 말이다.

착한 고기는 좋은 고기,착한 사랑은 아름다운 사랑을 의미한다.

'착하다'의 의미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어질다'라는 사전적 풀이와 달리 '좋다''훌륭하다''적절하다'로 대체된 셈이다.

기이한 일이다.

본래대로 쓰이는 '착한 사람'의 '착하다'는 '어리숙하다''바보같다''멍청하다'와 동의어로 여겨지더니 갑자기 칭찬 내지 찬양하거나 자랑하고 싶은 데다 갖다붙이게 된 건 무슨 연유일까.

더러는 '법 없이 살 사람'이란 얘기가 욕이 된 세상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라고 한다.

삭막한 세상에서 의미가 전도된 '착하다'에 대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현상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품성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꼽거니와 '착하다'의 가치는 변할 수 없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사악하고 고약한 욕심쟁이들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선량한 이들이 떠받친다.

제 목숨 내놓고 남을 구하는 사람도 있고,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이웃집 아이의 비명소리에 달려나가는 여대생도 있으니 괜찮지,남이야 어떻게 되든 제 욕심 채우기에 바쁜 사람만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아직도 멀쩡하랴.'착하다'가 몸매나 가격보다 '마음,성품,이웃,관리'처럼 원래 쓰일 곳에 쓰였으면 싶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