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가와 유키코 < 와세다대 경제학 교수 >

큰 병을 앓았던 환자가 짓는 안도의 미소는 어딘가 약하다.

지난 21일 회담을 끝낸 한ㆍ일 두나라 정상의 미소에도 그런 약함이 엿보였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들먹이지 않고 '실리'를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분명한 호의를 나타냈다.

그러나 일본은행 총재 인사 하나 정부 맘대로 못하는 정국에서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긴 어렵다.

호의를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정권 말기에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의회 비준을 얻어야 하는 미국 정부도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실리'를 얻는 게 늦어지면 한ㆍ미ㆍ일 협력체제 재구축에 나선 한국의 '경제 대통령' 입장은 괴로울 것이다.

3년 이상이나 중단됐던 한ㆍ일 FTA 재교섭은 가장 큰 '실리' 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모두 그 실리의 본질에선 거리가 있다.

한국의 여론은 아직도 '수출=선(승리)''수입=악(패배)'의 중상주의적 발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일무역 적자 확대는 '패배' 누적의 감정론으로 연결된다.

적자의 요인을 일본의 기술 이전 부족으로 돌리는 등 4반세기전의 논의마저 부활하고 있는 것엔 솔직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액정패널(LCD) 등의 중간재 수입으로 한국에 대한 적자가 늘고 있는 중국이 한국에 똑같은 요구를 한다면 한국은 응할 수 있을까.

일본의 경우도 기업의 권익 확대와 농수산업의 보호를 금과옥조로 삼는 한 FTA협상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쟁은 사업 매수나 매각,기술 표준의 네트워크화,지식재산권 전략,전문 인재의 이동 등 진정한 의미의 개방적 사업 환경이 원칙이다.

그러나 일본에선 시장 접근이나 경쟁법 등에 대한 글로벌화가 깊이 검토된 적이 거의 없다.

더구나 국내 생산자와 수입자 간 이익 상충마저 조정할 수 없는 농수산 가공품 등은 아예 논외 대상이다.

한국과 일본이 FTA 체결에만 집착하면 할수록 경제협력 '실리'의 돌파구는 더 안 보일지 모른다.

FTA와 비슷하거나,그 이상의 무역 촉진 효과를 내는 협력 분야는 많다.

예컨대 한ㆍ일 간 관세 수준은 전체적으로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통관 수속이나 물류의 효율성이 경쟁력엔 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전세계의 전면적인 관세 철폐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불과 1%정도 늘릴 뿐이지만 통관 효율화 등을 통한 무역 원활화 효과까지 합치면 3%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ㆍASEAN)에선 이미 전자 통관의 전제가 되는 관세 분류 번호의 통합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공통의 4자릿수를 한층 더 심화시켜 아세안 공통의 6자리수까지 만든 상태다.

관세분류번호의 통합은 FTA에 있어서 원산지 증명의 발급 비용을 줄이고, 통관 담당자의 자의적 품목 판단을 막는 등 무역 원활화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한ㆍ일 간에는 그런 기술적인 작업조차 논의된 적이 없다.

검역은 품질로 경쟁해야 하는 한ㆍ일의 농수산 무역에서 중요한 요소다.

검역 작업을 신속화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데이터 교환이나 검역 전문관의 의견교환 등을 통해 원만하게 처리하면 두 나라의 소비자들도 안심할 수 있고 농수산물 교역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서로 이웃 나라이면서도 FTA를 체결하지 못한 경우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할 것이다.

때문에 한ㆍ일 FTA 교섭 재개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무역 증대는 반드시 FTA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관세 인하 이상의 효과를 갖는 협력 분야는 얼마든지 있다.

서로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실현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한ㆍ일 간 전략적 파트너십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은 FTA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