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쌀 보호주의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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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최근 국제 쌀 가격 폭등세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인 필리핀의 쌀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공급부족으로 쌀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면서 필리핀 국민들 사이에선 폭동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필리핀 정부가 자초한 일이었다.
필리핀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 가운데 유일하게 정부가 쌀 수입을 독점하고 자국 농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관세를 물리는 등 강력한 규제 정책을 펴 왔다.
농산물 수출입을 총괄 감독하는 국가 기관인 필리핀식량청(NFA)은 1970년대부터 쌀 수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 당국자들은 그동안 NFA가 농민들을 보호하고 쌀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실제 결과는 그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필리핀 쌀 재배 농민들의 연간 소득 수준은 최하위에 머물고 있으며 쌀값 폭등세는 꺾일 줄 모른다.
더욱이 NFA는 관세 수입과 더불어 연간 12억필리핀페소(약 288억원)에 이르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다.
한 마디로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돈 먹는 하마'인 셈이다.
10년 전만 해도 필리핀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쌀 수출국이었다.
하지만 세계 쌀값이 필리핀에 비해 훨씬 낮아지자 NFA 등 정부 당국은 자국 내 쌀 재배 생산성을 높이는 것보다 쌀을 수입하는 게 단기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필리핀은 수입을 통한 가격 조정에만 매달리면서 농업 지원을 등한시했다.
반면 태국이나 베트남 등은 꾸준히 쌀 생산량을 증대시키며 수출을 통한 수익 창출을 강조하는 정책을 유지했다.
이제 세계 쌀 가격은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의 수요 폭증과 생산량 부족이 겹치며 5년 전보다 두 배로 뛰어올랐다.
호주와 방글라데시 등 주요 쌀 수출국의 농민들은 고유가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쌀 대신 옥수수와 같은 바이오연료 생산용 작물 재배를 늘리고 있다.
필리핀의 쌀 수입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쌀값과의 차이가 거의 없어지자 쌀 수입에 따른 차익으로 배를 불려온 NFA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일관성 없는 농업 정책 또한 큰 문제다.
지난 30년간 필리핀 농림부 장관은 12번이나 교체됐으며 평균 재임 기간도 20개월을 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인 농업 발전계획을 수립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달 초 아로요 대통령은 쌀 무역을 민간에 더 많이 개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민간 쌀 수입업자들은 NFA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고 NFA보다 더 높은 관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필리핀 쌀 문제 해결에는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장기적 대책 마련과 쌀 무역의 전면적인 민간 개방이 필수적이다.
NFA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키고 NFA에 대한 감시도 강화해야 한다.
폐쇄적인 쌀 무역의 철밥통을 깨지 않으면 필리핀은 영원히 다른 나라에 손을 벌려야 할 것이다.
정리=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이 글은 아시아재단의 브루스 J.톨렌티노 경제개혁개발프로그램 부장이 '쌀 보호무역주의의 대가'(The Price of Rice Protectionism)란 제목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최근 국제 쌀 가격 폭등세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인 필리핀의 쌀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공급부족으로 쌀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면서 필리핀 국민들 사이에선 폭동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필리핀 정부가 자초한 일이었다.
필리핀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 가운데 유일하게 정부가 쌀 수입을 독점하고 자국 농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관세를 물리는 등 강력한 규제 정책을 펴 왔다.
농산물 수출입을 총괄 감독하는 국가 기관인 필리핀식량청(NFA)은 1970년대부터 쌀 수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 당국자들은 그동안 NFA가 농민들을 보호하고 쌀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실제 결과는 그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필리핀 쌀 재배 농민들의 연간 소득 수준은 최하위에 머물고 있으며 쌀값 폭등세는 꺾일 줄 모른다.
더욱이 NFA는 관세 수입과 더불어 연간 12억필리핀페소(약 288억원)에 이르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다.
한 마디로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돈 먹는 하마'인 셈이다.
10년 전만 해도 필리핀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쌀 수출국이었다.
하지만 세계 쌀값이 필리핀에 비해 훨씬 낮아지자 NFA 등 정부 당국은 자국 내 쌀 재배 생산성을 높이는 것보다 쌀을 수입하는 게 단기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필리핀은 수입을 통한 가격 조정에만 매달리면서 농업 지원을 등한시했다.
반면 태국이나 베트남 등은 꾸준히 쌀 생산량을 증대시키며 수출을 통한 수익 창출을 강조하는 정책을 유지했다.
이제 세계 쌀 가격은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의 수요 폭증과 생산량 부족이 겹치며 5년 전보다 두 배로 뛰어올랐다.
호주와 방글라데시 등 주요 쌀 수출국의 농민들은 고유가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쌀 대신 옥수수와 같은 바이오연료 생산용 작물 재배를 늘리고 있다.
필리핀의 쌀 수입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쌀값과의 차이가 거의 없어지자 쌀 수입에 따른 차익으로 배를 불려온 NFA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일관성 없는 농업 정책 또한 큰 문제다.
지난 30년간 필리핀 농림부 장관은 12번이나 교체됐으며 평균 재임 기간도 20개월을 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인 농업 발전계획을 수립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달 초 아로요 대통령은 쌀 무역을 민간에 더 많이 개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민간 쌀 수입업자들은 NFA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고 NFA보다 더 높은 관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필리핀 쌀 문제 해결에는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장기적 대책 마련과 쌀 무역의 전면적인 민간 개방이 필수적이다.
NFA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키고 NFA에 대한 감시도 강화해야 한다.
폐쇄적인 쌀 무역의 철밥통을 깨지 않으면 필리핀은 영원히 다른 나라에 손을 벌려야 할 것이다.
정리=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이 글은 아시아재단의 브루스 J.톨렌티노 경제개혁개발프로그램 부장이 '쌀 보호무역주의의 대가'(The Price of Rice Protectionism)란 제목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