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빗 뱅킹(PB) 센터를 거래하는 '큰손' 고객들이 자식 경제교육 시키는 걸 보고 있으면 놀랄 때가 많다.

어떨 때 보면 '섬뜩할' 정도다.

사자가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부산에서 폐기물 처리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부동산 개발업을 하고 있는 자산규모 수천억원대의 50대 고객이 있었다.

20∼30대 딸만 셋인 이 고객은 "이제 슬슬 내 사업 물려줄 자식 놈을 찾아야겠다"며 딸 자식들을 직접 시험해 본 적이 있다.

"각각 1억원씩의 돈을 세 딸에게 증여했어요. 그러고 '앞으로 1년 동안 어떤 식으로든 돈을 굴려보라'고 지시했죠. 딸 자식들의 사업능력이라든가,재산을 불리는 감각 같은 거를 한번 보고 싶었거든. 아직 나이가 20대인 둘째와 셋째에게는 좋은 경제교육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약속했던 1년이 지난 뒤 투자원금 대비 50%의 수익을 첫째 딸이 올려온 것을 보고 이 고객은 마음 속으로 첫째를 후계자로 점찍어 놨다고 했다.

부자들이 이처럼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자식들에게 경제교육을 시키고 시험을 보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평생 동안 쌓아올린 부(富)를 자식 세대에서 한순간에 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버지만한 아들이 없다'고 스스로의 힘으로 재산을 일군 1세대에 비해 그 자식,또는 손자세대의 경우 돈을 버는 자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어려운 시절을 뚫고 나온 1세대의 입장에서는 자식이나 손자가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하더라도 항상 부족하게 느껴지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또 재벌 2세나 3세들에겐 어릴 때부터 이들의 재산을 탐내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 혹독하게 경제관념을 심어주지 않으면 사기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도 한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40대 아들을 둔 80대 노인이 있었는데,이 노인이 들려준 얘기가 재미있다.

"아들 녀석이 중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좀 심하게 말하면 사기를 당해 오더군. 어린 나이에 이 녀석이 뭘 알겠어. '갚을 테니 돈 좀 빌려다오'하는 친구 녀석들에게 멋 모르고 돈 빌려줬다가 떼이는거지. 이게 사회생활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사기당하는 거랑 본질적으로는 다른 게 없거든."

그래서 이 노인 고객은 자식에게 매를 때리면서 "사람보는 눈부터 키우라"고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네 주위엔 네 돈만 보고 달려드는 놈들이 수두룩하다. 누가 사심 없이 끝까지 너와 함께 갈 것인지,어떤 놈이 사기꾼인지 구분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면 백날 공부잘해봤자 소용이 없다'며 호되게 야단을 쳤어. 다행히 아들 녀석이 센스가 있어서 고등학교 진학하고 나서부터는 돈 떼이는 일은 없더군."

이런 교육을 받아서였을까.

금융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몇몇 중소기업에 투자해 2∼3개 중소기업을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이 노인의 자식을 만나보면 인간관계에 있어 '맺고 끊는 게 분명하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자식들이 훌륭하게 성장해 자식 때문에 걱정하는 일이 없는 부모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은 자식들 때문에 속병을 앓기도 한다.

이런 고객들 가운데 몇몇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PB센터를 찾기도 한다.

경제관념 부족한 자식들에게 PB센터에서라도 경제교육을 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실제로 요즘 시중은행 PB센터들은 고객들의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2,3세 고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경제교육 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PB센터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과 자산운용,자녀의 출산부터 교육 결혼 상속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가문관리형 PB센터를 오픈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사회의 명사들을 초청해 2,3세 고객들에게 '좋은 말씀'을 들려주는 단순한 형태의 교육프로그램은 이미 시중은행들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한편 요즘에는 활발한 기부를 통해 스스로 자식들에게 모범을 보이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이런 사회적인 현상들은 매우 반갑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사회가 성숙해지고,이에 따라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부자들처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나라 부자들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것.

이런 생각을 가진 고객들의 경우 어린 나이 때부터 자식들에게 봉사활동을 시키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본받을 만한 사회의 일꾼으로 커나가는 분위기를 형성시켜 주기도 한다.

정해원 신한은행 잠실PB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