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인생의 주인공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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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왜 버십니까?”
매우 새삼스런 질문이지만 누가 이렇게 묻는 다면 허를 찔린 듯 움찔하고 말을 더듬게 된다. 죽자 사자 뛰고 있는 지금, 왜 뛰고 있냐니.
아이들 교육비를 위해서, 집을 사기 위해서, 결혼하기 위해서, 여행하기 위해서, 노후를 위해서.......대개들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하면 평생 돈에 끌려 다니며 사는 인생이 될 수 있다. 현재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배제되어있기 때문이다.
어떤 심리학자가 겪은 일이다. 하루는 공사판에서 흥미로운 인부를 만났다. 모든 인부들이 바퀴 2개짜리 수레를 쳐다보면서 손잡이로 밀고 가는데, 딱 한 인부만 수레를 끌고 갔다. 심리학자는 다른 인부와 다른 행동을 하는 그가 혹시 자아(ego)가 강한 사람은 아닐까 하고 이유를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레를 보면서 밀고 가는데 어째서 당신만 끌고 갑니까?”
그러자 인부는 별 이상한 것을 다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하도 밀고 다녀서 꼴 보기 싫어서 그래요.”
심리학자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수레를 끌고 가는 인부를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수레를 밀고 가는 사람은 평생 수레만 봐야 하지만, 그처럼 수레를 끌고 가는 사람은 하늘과 땅, 세상을 볼 수 있다. 인생의 주인공이 그가 되는 것이다.
인생의 수레는 많다.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 돈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 대박만 쫓아다니는 사람, 사랑만 찾아다니는 사람…. 그들은 하루 종일 수레만 쳐다보며 밀고 다니는 인부와 다를 바 없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건지 아니면 살아지는 건지를 잘 구별해야 한다.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면 ‘살아간다’는 말이 맞지만 누구를 위해 살고 있다면, 즉 주인공 자리를 누구에게 빼앗겼다면 그것은 ‘살아지는’ 것이기에.
영혼의 성숙 문제는 별개로 하고, 돈에 목숨을 거는 유태인들은 위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인생의 목적이 돈 버는 것이니까 답변이 더 궁색할 것이라고 추측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십중팔구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는 일.”
그들이 멸시를 당하면서 고리대금업을 하고 남의 피눈물을 쏟게 하며 등을 치는 이유는 큰 집도, 비싼 보석도, 아내도, 높은 학위도, 빛나는 명예도, 노후의 안락한 생활도 아닌 지금 바로 내 배가 부르기 위해서.
유태인들은 그래서 저녁 만찬을 가장 중요시한다. 유태인들의 금력(金力)의 상징이 만찬이다. 유태인들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그들의 부를 ‘지금’ 즐긴다. 얼마나 호화로운 만찬을 즐기느냐가 금력의 척도다. 아무리 부자라도 만찬이 허술하면 그 정도의 삶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잡다한 수다를 떨며 2시간이상 천천히 식사를 즐긴다. 이 만찬을 위해 그렇게 죽도록 일했는데 일이십 분 만에 후딱 먹어 치울 수는 없지 않은가. 어지간한 구두쇠라도 만찬만은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래서 유태인에게 호화로운 만찬에 초대받았다면 가장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또한 만찬에서 되도록 사업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만찬을 위해 사업을 하는 데 만찬 자리에서까지 사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는 게다. 초대하지 않은 식사시간에 방문은 가장 큰 실례 중의 하나다.
유태인들도 자식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와 문화가 달라 새겨들어야하지만 ‘일하기 위해 먹지 않고, 먹기 위해 일한다.’는 속뜻은 얼마든지 되새길만하다.
속뜻은 무엇인가. 바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라는 것.
중국 당대 스님 임제선사의 유명한 살생법문에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대목이 있다. ‘네 자신이 제일 진실하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그 분 말씀 중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말이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수처작주 입처개진)
‘수처작주’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인이 되어라, ‘입처개진’은 서 있는 것은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로, 어느 곳에 있든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고 풀이할 수 있다. ‘네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라.’ 아주 당연한 말 같지만 한번쯤 반문해봐야 한다. 과연 내 인생의주인공은 나인가,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아닌가.
소중한 자녀에게 재테크 조기교육을 시키다보면 자칫 돈 버는 목적을 간과하기 쉽다. 돈의 양 자체가 목적이 되면 남과 비교하여 돈 자랑에 빠지고 사회적으로 행세부리기 쉽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는 돈벌이는 돈이 생겨도 흥청망청 쓰고 인생을 허비하기 일쑤고, 알뜰해봐야 금고에 돈을 수집하는 수전노가 되는 게 고작이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요,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이 가장 소중한 나의 부처님이다. 항상 지금 내가 처해 있는 곳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라. 그러면 그곳이 정토가 된다.<임제록>”
돈이 넉넉해서 자녀에게 얼마든지 비싼 옷을 사주고 고액의 과외를 시켜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 하나 하나는 손가락의 지문처럼 모두 다른 천성을 가슴에 품고 있으며 바라보는 꿈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칫 금력에 가려 오히려 인생의 미아가 될 수 있다. 가난을 아는 자가 큰 부자를 꿈꾸고 실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만약 따로 중요한 사람이 있고, 일이 있고, 장소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될 수 없다. 가르치기 전에 먼저 부모가 스스로를 돌아봐야한다. 과연 내가 인생의 주인공인가. 자식은 책에서 배우지 않고 부모를 따라 하기 마련이기에.(hooam.com).
매우 새삼스런 질문이지만 누가 이렇게 묻는 다면 허를 찔린 듯 움찔하고 말을 더듬게 된다. 죽자 사자 뛰고 있는 지금, 왜 뛰고 있냐니.
아이들 교육비를 위해서, 집을 사기 위해서, 결혼하기 위해서, 여행하기 위해서, 노후를 위해서.......대개들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하면 평생 돈에 끌려 다니며 사는 인생이 될 수 있다. 현재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배제되어있기 때문이다.
어떤 심리학자가 겪은 일이다. 하루는 공사판에서 흥미로운 인부를 만났다. 모든 인부들이 바퀴 2개짜리 수레를 쳐다보면서 손잡이로 밀고 가는데, 딱 한 인부만 수레를 끌고 갔다. 심리학자는 다른 인부와 다른 행동을 하는 그가 혹시 자아(ego)가 강한 사람은 아닐까 하고 이유를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레를 보면서 밀고 가는데 어째서 당신만 끌고 갑니까?”
그러자 인부는 별 이상한 것을 다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하도 밀고 다녀서 꼴 보기 싫어서 그래요.”
심리학자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수레를 끌고 가는 인부를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수레를 밀고 가는 사람은 평생 수레만 봐야 하지만, 그처럼 수레를 끌고 가는 사람은 하늘과 땅, 세상을 볼 수 있다. 인생의 주인공이 그가 되는 것이다.
인생의 수레는 많다.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 돈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 대박만 쫓아다니는 사람, 사랑만 찾아다니는 사람…. 그들은 하루 종일 수레만 쳐다보며 밀고 다니는 인부와 다를 바 없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건지 아니면 살아지는 건지를 잘 구별해야 한다.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면 ‘살아간다’는 말이 맞지만 누구를 위해 살고 있다면, 즉 주인공 자리를 누구에게 빼앗겼다면 그것은 ‘살아지는’ 것이기에.
영혼의 성숙 문제는 별개로 하고, 돈에 목숨을 거는 유태인들은 위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인생의 목적이 돈 버는 것이니까 답변이 더 궁색할 것이라고 추측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십중팔구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는 일.”
그들이 멸시를 당하면서 고리대금업을 하고 남의 피눈물을 쏟게 하며 등을 치는 이유는 큰 집도, 비싼 보석도, 아내도, 높은 학위도, 빛나는 명예도, 노후의 안락한 생활도 아닌 지금 바로 내 배가 부르기 위해서.
유태인들은 그래서 저녁 만찬을 가장 중요시한다. 유태인들의 금력(金力)의 상징이 만찬이다. 유태인들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그들의 부를 ‘지금’ 즐긴다. 얼마나 호화로운 만찬을 즐기느냐가 금력의 척도다. 아무리 부자라도 만찬이 허술하면 그 정도의 삶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잡다한 수다를 떨며 2시간이상 천천히 식사를 즐긴다. 이 만찬을 위해 그렇게 죽도록 일했는데 일이십 분 만에 후딱 먹어 치울 수는 없지 않은가. 어지간한 구두쇠라도 만찬만은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래서 유태인에게 호화로운 만찬에 초대받았다면 가장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또한 만찬에서 되도록 사업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만찬을 위해 사업을 하는 데 만찬 자리에서까지 사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는 게다. 초대하지 않은 식사시간에 방문은 가장 큰 실례 중의 하나다.
유태인들도 자식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와 문화가 달라 새겨들어야하지만 ‘일하기 위해 먹지 않고, 먹기 위해 일한다.’는 속뜻은 얼마든지 되새길만하다.
속뜻은 무엇인가. 바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라는 것.
중국 당대 스님 임제선사의 유명한 살생법문에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대목이 있다. ‘네 자신이 제일 진실하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그 분 말씀 중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말이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수처작주 입처개진)
‘수처작주’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인이 되어라, ‘입처개진’은 서 있는 것은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로, 어느 곳에 있든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고 풀이할 수 있다. ‘네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라.’ 아주 당연한 말 같지만 한번쯤 반문해봐야 한다. 과연 내 인생의주인공은 나인가,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아닌가.
소중한 자녀에게 재테크 조기교육을 시키다보면 자칫 돈 버는 목적을 간과하기 쉽다. 돈의 양 자체가 목적이 되면 남과 비교하여 돈 자랑에 빠지고 사회적으로 행세부리기 쉽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는 돈벌이는 돈이 생겨도 흥청망청 쓰고 인생을 허비하기 일쑤고, 알뜰해봐야 금고에 돈을 수집하는 수전노가 되는 게 고작이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요,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이 가장 소중한 나의 부처님이다. 항상 지금 내가 처해 있는 곳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라. 그러면 그곳이 정토가 된다.<임제록>”
돈이 넉넉해서 자녀에게 얼마든지 비싼 옷을 사주고 고액의 과외를 시켜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 하나 하나는 손가락의 지문처럼 모두 다른 천성을 가슴에 품고 있으며 바라보는 꿈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칫 금력에 가려 오히려 인생의 미아가 될 수 있다. 가난을 아는 자가 큰 부자를 꿈꾸고 실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만약 따로 중요한 사람이 있고, 일이 있고, 장소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될 수 없다. 가르치기 전에 먼저 부모가 스스로를 돌아봐야한다. 과연 내가 인생의 주인공인가. 자식은 책에서 배우지 않고 부모를 따라 하기 마련이기에.(hoo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