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라시마 日미쓰이 전략연구소장 '위기의 세계경제' 긴급진단
"글로벌 머니게임이 화근… 내년쯤 새질서 구축"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로 폭풍우에 휩싸였던 세계 경제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신용위기 바닥론'이 나오면서 주가가 강한 하방 경직성을 보이고,달러화 약세도 진정되고 있다.

세계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장(61)을 찾았다.

그는 세계 경제 흐름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미래 예측력으로 이름난 국제경제 전문가다.

도쿄역 앞 미쓰이물산 본사 2층 연구소장실에서 만난 그는 "서브프라임 위기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며 "2008년은 세계 경제에 '고난의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대혼란에 빠졌던 세계 경제가 안정을 되찾는 양상이다.

위기는 끝난 것인가.

"답변을 하기 전에 서브프라임 위기의 본질부터 살펴보자.이번 위기의 실체는 '미국을 진원지로 한 세계 경제의 머니게임화'였다.

세계적 과잉 유동성이 미국에서 주택을 상대로 머니게임을 벌이면서 파생한 문제다.

대출금 회수가 불가능한 저소득층에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준 것은 연체를 하더라도 담보로 잡은 집값이 3년 내 2배로 뛰면 손해볼 게 없다는 투기적 계산 때문이었다.

특히 대출 상품의 증권화로 부실 규모가 커졌고,그로 인해 신용질서도 망가졌다.

세계적인 머니게임을 어떻게 제어하고,무너진 신용 시스템을 얼마나 재구축하느냐가 위기 해소의 잣대다.

이런 맥락에서 서브프라임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잉 유동성 규모는 어느 정도로 보나.

"예를 들어보자.21세기 들어 지난 7년간 세계 전체의 실질 GDP(국내총생산)는 연평균 3.5% 증가했다.

이에 비해 세계 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은 연평균 14% 늘었다.

중국 상하이 증시는 시가총액이 6배로 불었다.

실물 경제에 비해 금융 경제가 너무 많이 부풀려진 것이다.

부풀려진 만큼이 과잉 유동성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 증시가 최근 조정을 많이 받았는데,거품이 꺼져 가는 과정이다."

―과잉 유동성이 미국으로 몰려 문제를 일으킨 원인은 무엇인가.

"역설적인 얘기지만 미국 경제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미국에 큰 영향을 준 사건 중 하나가 이라크 전쟁이다.

처음엔 이 전쟁으로 군사비 지출이 늘면 미국 경제에 득이 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오히려 미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부담이 총 3조달러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미국 경제는 실력 이상으로 밖에서 돈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됐다.

그것을 위해 금리를 올리고,매력적인 금융상품을 내놓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도 그중 하나였다."

―서브프라임 위기의 뿌리가 이라크 전쟁에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이라크 전쟁과 서브프라임 부실,그로 인한 달러의 위기는 인과관계로 연결돼 있다."

―그러면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과거 같으면 미국 주도로 주요국이 손발을 맞춰 공동 대처할 수 있었다. 주요국이 엔화 강세를 유도한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적 협조 체제가 느슨해진 상태다. 미국의 리더십도 약해졌다. 유로화 등이 생기면서 세계 각국의 달러에 대한 의존도도 줄었다. 국제 공조를 통한 위기 해결이 쉽지 않아졌다. "

―미국 경제 둔화는 일본 경제에도 치명적이다.

2002년 이후 지속된 사상 최장의 경기 호조세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큰데.

"일본 경제가 그동안 긴 회복세를 탔다고 하지만 실제로 경기 회복감을 느끼는 국민은 많지 않다.

성장률 등 수치로 보면 분명 회복됐지만 국민들의 소득은 늘지 않았다.

2000년과 비교해 2007년 근로자들의 가처분 소득은 오히려 6% 감소했다.

당연히 소비도 늘지 않았다.

내수 침체 속의 외형 성장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4년간 원자재값은 2배 이상 뛰었는데, 일본 내 소비재값은 10% 하락했다는 점이다.

상류는 인플레,하류는 디플레인 이중구조가 일본 경제의 현실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외부 충격에 더 취약한 것이다.

외형상의 경기 회복세도 꺾일 가능성이 높다."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엔캐리 트레이드(싼 엔화자금을 조달해 고수익 외화자산에 투자하는 것) 자금의 급격한 청산 가능성도 지적된다.

"크게 걱정할 필요없다. 물론 일부 엔캐리 자금은 일본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엔고에서는 적은 엔화로 더 많은 외화를 살 수 있어 이 기회에 해외 투자에 나서려는 사람도 있다.

엔캐리 청산 흐름 속에서 소위 '미니 엔캐리'가 이뤄지고 있다.

게다가 1500조엔(약 1경5000조원)에 달하는 일본의 개인 금융자산은 일본 내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해외 투자 기회만 엿보고 있다.

미국 달러는 금리가 떨어져 투자 매력이 줄었다고 하지만,호주나 뉴질랜드 등은 아직도 금리가 연 6~8%에 달한다.

엔캐리 투자 대상은 미국 달러만이 아니다."

―원유와 금 등 상품 가격이 크게 올랐다.

상품시장 전망은 어떻게 보나.

"상품시장에서도 머니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중동의 오일 머니가 올해만 1조8000억달러에 달하고,중국은 1조5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

이 돈들이 펀드나 핫머니 형태로 수익이 나는 곳을 찾아 세계를 헤매고 있다.

얼마나 더 상품시장을 휘저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유가가 최근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지만 200달러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세계 경제는 올해 '고난의 해'가 될 수 있다.

실질 소득은 줄어드는데 물가는 크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고난은 언제쯤 끝나나.

"흐트러진 세계 금융질서와 신용질서가 재구축돼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은 내년쯤에나 가능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앞서 일본 경제가 이중구조라고 했지만,한국 경제도 또 다른 이중구조다.

삼성 현대차 LG 등 세계 일류 기업을 갖고 있지만 소재.부품 분야의 중소기업은 매우 취약하다.

잘 나가는 대기업과 허약한 중소기업의 이중구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즉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최대 과제다."

―이명박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를 강조하고 있으니 희망이 있지 않겠나.

"이 대통령이 경제 우선 원칙을 밝힌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여건은 별로 좋지 않다.

머니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경제 환경에서 한국의 새 정부가 제조업 경쟁력을 잃지 않고 경제를 균형있게 운영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국과 일본은 2004년 중단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한.일 FTA 체결이 두 나라의 경제와 기업에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한.일 FTA를 빨리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FTA를 체결하면 관세 인하로 인해 교역이 늘어날 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관계가 두터워진다.

예컨대 양국 간 경제 분쟁의 해결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함께 추진할 수 있는 환경기술 개발 등 공동 프로젝트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런 FTA의 장점을 두 나라 국민들에게 확실히 설명해 일부 반대론자를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