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에 처하면 평소 살갑게 굴던 사람들조차 곁을 떠난다.

밀려드는 외로움은 주체할 길 없는 분노를 낳고,분노는 자신을 어려움에 빠뜨린 대상은 물론 세상에 대한 증오를 부르고,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는 자멸적 행동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시련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이유다.

1971년 스탠퍼드대학 교도소 실험 결과를 다룬 '루시퍼 이펙트'(필립 짐바르도)는 특정 상황에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보여준다.

운명의 덫에 걸린 주인공이 포효하다 죽어가지 않고 인내와 용기로 덫을 빠져나오는 얘기의 감동이 시대를 초월하는 건 이런 까닭이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과 '쇼생크 탈출',그리고 '벤허'의 인기가 시들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벤허'(감독 윌리엄 와일러)는 신의 섭리를 강조한 일종의 선교영화로도 분류되지만 그보다는 역시 불굴의 인간 의지가 이뤄내는 기적 영화에 가깝다.

그렇지 않고서야 1959년 개봉된 이래 50년 동안 계속 사랑받기는 어렵다.

배경은 예수 생전인 서기 26년.유대인 귀족 벤허가 로마인 친구 멧살라의 권력욕 때문에 모든 걸 잃고 노 젓는 노예로 전락하지만 해적으로부터 사령관을 구함으로써 그의 양자가 돼 고향으로 복귀,전차 경기를 통해 복수도 하고 잃었던 가족도 되찾는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 영화다.

유명한 전차 경기 장면을 위해 1만5000명이 넉 달 동안 연습했다니 지금 봐도 웅장하다는 느낌이 괜한 게 아닌 셈이다.

세월이 흘러 벤허 역의 찰턴 헤스턴이 세상을 떠났다.

요즘 젊은층의 눈으로 보면 미남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가 활동하던 시절엔 강인한 이미지로 서사극 주인공을 휩쓸었다.

주연배우의 사망으로 '벤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지 모른다.

대사가 설교조로 다소 길고 러브 스토리도 약하지만 끔찍한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방기하지 않고 끝까지 운명과 맞서 승리하는 모습,간절한 기도와 믿음 끝에 기적을 체험하는 걸 보면서 좌절의 늪에서 헤쳐나올 힘을 얻는 이들이 많았으면 싶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