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내놓은 석유제품 유통구조 개선방안은 하나하나가 정유업계에 대한 '선전포고'성격이 강한 조치들이다.

이런 초강수를 둔 것은 소비자 가격이 어떻게 매겨지는지 정유사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유통 구조에서는 유류세 10% 인하 등 정부의 유가 대책이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소비자물가가 2.5% 오르는 동안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은 매달 평균 6.8~10.8%씩 급등했다.

국제 유가가 많이 오른 탓도 있지만 정유사가 기름값 상승에 따른 고통을 전혀 나눠지지 않고 그대로 소비자 가격에 전가했기 때문이란 게 정부의 판단이다.

◆대형마트 PB 주유소 생긴다

유통구조 개선방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유소 상표표시 규제를 풀어 대형마트 등 신규사업자가 자기 상표를 내건 주유소를 만들 수 있게 한다는 부분이다.

현행 석유사업법과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등에는 석유제품 공급사의 상표를 붙이도록 돼 있다.

복수의 정유사 상표를 한꺼번에 표시하는 것(이른바 복수폴)은 가능하지만 기름을 공급하는 업체와 전혀 관계없는 자체 상표로 유통하는 것은 제한됐다.

재정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대형할인점 이마트에서 주차장 한쪽을 털어 주유소를 만들었을 때도 SK에너지 GS칼텍스 등 공급사 상표를 달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이마트 주유소'로 표시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석유제품에도 PB(private brand) 개념을 도입해 기존 정유사 직영 주유소들과 경쟁을 붙인다는 얘기다.

미국의 월마트나 코스트코,영국 테스코 등 유명 할인점들은 대개 주차장에 PB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교외에 위치한 이점을 살려 이들 대형마트 주유소 기름값은 도심 주유소에 비해 최고 15%까지 싸 쇼핑객들이 주말 쇼핑을 마친 뒤 휘발유를 가득 채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한국은 교외형 할인점보다는 '도심형 할인점' 비중이 높아 추가용지 확보가 쉽지 않고 건축규제나 안전규제 등 장애물이 많다는 문제가 있다.

대형마트 업계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신세계 이마트측은 "석유제품 관련 유통제도가 혁신적으로 개선되고 국내외 석유제품 가격차이가 줄어들어 공급선이 확실하다면 사업 참여를 충분히 검토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임종룡 재정부 경제정책국장 역시 "참여 의사를 보인 대형마트 업체가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반발

이 밖에도 정부는 주유소가 자유롭게 정유사를 바꿔가며 석유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업계에 관행처럼 돼 있는 '배타적 공급계약'을 금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키로 했다.

"우리 제품만 받는다는 조건으로 공급한다"는 조건을 붙일 수 없게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정유사 공장도 가격의 공개주기를 현행 1개월에서 1주일로 단축하고 석유수입업자에 대한 단계적 규제를 조사해 불합리한 진입규제를 철폐키로 했다.

경쟁 구도를 만들어 정유사의 과점체제를 깨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고강도로 압박해오는 것에 대해 정유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 주유소 사업 참여 허용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내놨다.

휘발유 등 유류제품이 공급과잉상태에 있어 가격안정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정유업체 한 관계자는 "국내 석유류제품의 가격이 국제가보다 낮게 형성된 가격구조를 감안할 때 경쟁 구도를 만들기 어렵고 가격 안정도 기대하기 힘들다"며 "1997년 주유소 거리제한이 철폐된 후 난립하고 있는 주유소들만 대형마트 가세로 심각한 영업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