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 <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화가 www.choisunho.com >

봄이다.

부여 읍내시장에 나갔더니 할머니들이 나물이며 채소들을 한보따리씩 풀어놓고 봄햇살 아래 손님을 맞는다."이걸 어따 끓여 먹을까." "된장에도 좋구,국에도 좋구,김치에 지져 먹어두…." 겨우내 추위에 움츠리다 겨우 새싹을 낸 지질한 냉이 한 줌에 오고가는 대화다.

나물 파는 할머니는 "맛있어유 잡숴봐유" 하며 살 사람 대답도 하기 전에 냉이를 한 줌 집더니 검정 비닐봉지를 주섬주섬 꺼내 바람을 확 불어넣고 봉지를 부풀린다.

냉이를 담으려는 기세다.

"이눔하구 저눔 천원어치씩 줘유.쑥국이 맛있겠네…." 냉이와 쑥을 사면서 흥정이 오간다.

서산 마애삼존불같이 넓적한 할머니의 얼굴에 잠시 삶의 즐거움이 스친다.봄바람이 휑한 장바닥 빈 먼지만 쓸고 간다.

시골 장터를 지나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난다.

벌써 십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벌교에 천연 쪽염색을 배우러 간 적이 있다.

때가 7월이니 한창 쪽풀을 베어 커다란 옹기에 넣고 꼬막껍질을 태워 쪽물을 우려내고 무명천에 염색을 하는 막일을 하며 여러 날을 보냈다.

벌교장날이 되었다.

공방에서 필요한 생필품이며 수박 참외 등 먹거리를 사러 나가는 주인을 따라 장에 갔다.

그야말로 남이 장에 가니 따라간 셈이다.

그런데 장터 한 구석에 작년에 보았던 참빗장수 할아버지가 낡고 때묻은 무명한복에 상투를 튼 그 모습,그 행색을 하고 여전히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납작한 좌판에 엉덩이를 걸치고 쪼그려 앉은 할아버지 앞에는 손바닥만한 보자기가 펼쳐져 있고,그 위에 참빗 너댓개가 놓여 있었다.

보기에는 초라했지만 그는 어엿한 참빗장수였다.

"참빗 얼마예요." 긴 여름날 오후 해에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졸던 할아버지는 고개를 비스듬히 들더니 "이천오백원!" 대답이 간단하다.

나는 딱히 살 것도 아닌데 괜히 값을 물어보아 잠만 깨웠다는 미안함에 슬그머니 자리를 뜨다 한마디 던졌다.

"할아버지,여기 왜 계세요?" 아무리 보아도 참빗이 팔릴 것 같지 않았다.

"남응게!" 생각도 못한 대답이 뒤통수를 확 때렸다.

한마디로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계산은 이러했다.

하루에 참빗 하나만 팔아도 집에서 장에 오고가는 버스비 오백원,참빗 원가 천오백원 빼고 점심은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으로 해결하면 고스란히 오백원의 순이익이 남는다.

종일 참빗을 팔다 보면 나다니며 돈 쓸 일이 없으니 두 개부터는 천오백원이 남고 세 개면 이천오백원….하루 장날에 이삼천원 벌이는 족히 되는 알짜장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