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실시된 12대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국민당의 마잉주 후보(58)가 승리했다.

50여년간 대만을 통치해오다가 2000년 민진당의 천수이볜 총통에게 정권을 내줬던 국민당은 8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루게 됐다.

마 후보는 모두 765만8724표를 확보,58.4%의 득표율로 544만5239표(41.6%)를 얻은 셰창팅 민진당 후보를 16.8%포인트 차이로 제쳤다.

두 후보의 득표 격차는 221만표로 2004년 3만표가량의 차로 천 총통이 당선된 것에 비교하면 국민당의 압승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처럼 경제 회생을 바라는 대만 국민들의 염원이 마 후보 승리의 원동력으로 꼽힌다.

투표율은 76.3%로 최종 집계됐다.

국민당은 지난 1월 총선에서 3분의 2의 의석수를 확보한 데 이어 총통 선거에서도 승리해 확고한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됐다.

마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되자 "대만은 양안(兩岸ㆍ중국과 대만) 긴장보다 평화를,정치 불안보다 안정을,경제 불안보다 번영을 원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마 당선자는 오는 5월20일 제12대 총통으로 취임하게 된다.

◆경제 국공합작

'54년 만의 3차 국공(國共ㆍ대만 국민당과 중국공산당) 합작'. 이번 선거가 갖는 의미다.

과거 1차(1924~1927년)와 2차(1937~1945년) 국공합작은 제국주의와 일본의 침탈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중국공산당 세력이 급속하게 팽창했으며 결국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밀려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공합작의 피해자인 국민당 정부가 이번에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당시에는 제국주의의 총칼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자는 게 목적이다.

마 당선자는 양안 공동 시장 창설을 키워드로 '경제 회생'을 내걸었다.

직접교역(通商),정기수송(通航),서신왕래(通郵)의 3통(通) 정책을 조건 없이 실현하기로 했다.

1년 안에 양안 직항을 개통하기로 했다.

대만과 중국을 오가려면 홍콩이나 마카오 등을 거쳐야 했던 불편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 연간 27만명에 불과한 중국의 대만 방문객을 360여만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학위를 대만에서도 인정하는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

더 주목되는 것은 중국 자본 유치다.

투자와 환전의 자유를 허용키로 한 것.중국 사람들이 대만에서 부동산을 사고 공장을 짓는 데 규제를 없애기로 했다.

더불어 주식시장도 개방할 방침이다.

중국 위안화를 대만에서 자유롭게 교환해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중국 금융회사의 대만 진입도 허용키로 했다.

한마디로 중국 돈에 '프리 패스증'을 주겠다는 의미다.

중국 정부도 이에 화답하고 나섰다.

중국 대륙에 진출해 있는 대만 기업 중 내륙으로 이전하는 기업들에는 300억위안(약 4조2000억원)의 정책 자금을 융자해주기로 했다.

최고 18%인 소득세율도 10%로 낮춰줄 예정이다.

대만 기업에만 일종의 '동포 프리미엄'을 주는 셈이다.

또 장쑤성에는 대만 농민을 위한 창업단지도 조성키로 했다.

중국의 자본과 대만의 기술이라는 우량인자가 결합되는 것이다.

이는 위안화를 사실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위안화 블록'이 만들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과 대만은 54년 만에 세 번째 국공합작을 실현,경제를 업그레드할 수 있는 강력한 성장엔진을 확보하게 됐다.

◆자본+기술의 양안 블록

대만과 중국의 국공합작 재개는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상품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대만 총통선거 이틀 전인 지난 20일 "대만 시장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그는 "양안 간 협력 확대로 대만달러가 중국 위안화에 연동돼서 평가될 것"이라며 "국민당의 승리로 양측은 경제 협력을 넘어 경제 통합으로 가게 될 것이며 이런 점에서 중국이나 대만 시장이 모두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짐 로저스와 같은 큰손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은 국공합작이 가진 커다란 잠재력 때문이다.

산업적 측면에서 볼 때 특히 정보기술(IT) 분야는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를 전망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대만의 작년 수출 중 70%가 하이테크 제품이라는 점을 지적하며,중국의 자본이 가세할 경우 세계 하이테크 산업에서 대만 브랜드가 강력한 파워를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대만의 하이테크 기술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와 있다.

대만의 작년 반도체 매출은 총 469억5100만달러다.

한국의 460억달러를 추월했다.

2006년엔 한국에 11억달러 뒤진 420억달러였다.

반도체 공장 중 생산성이 높은 300㎜ 웨이퍼 공장은 한국보다 1개 많은 7개가 가동 중이다.

파워칩 뱅가드인터내셔널 등은 14조원을 투입해 내년까지 웨이퍼 공장을 5개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삼성전자도 아직 만들지 못한 30나노급 메모리 공정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세계 100대 IT 기업 중 대만 업체는 13개로 한국의 5개보다 월등히 많다"며 "대만은 세계 IT 주요 부품의 80%를 생산하는 무서운 강자"라고 지적했다.

리먼브러더스는 "대만의 기술을 중국의 자본이 떠받칠 경우 양안은 세계 최고의 기술 클러스터(집적) 기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중국이 산업 클러스터 기지로 부상하면서 형성되고 있는 중간재 시장을 대만이 석권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대만 기업으로 중국 선전에 주력 공장을 건설,2006년 406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중국 최대 수출 기업 자리를 넘보고 있는 훙하이그룹과 같은 제2,제3의 중국-대만 혼혈의 거대 기업이 잇따를 것이란 분석이다.

◆위협당하는 한국

이번 대만 총통선거 이슈 중 하나는 "어떻게 한국에 추월을 허용했느냐"였다.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만 해도 1만4426달러로 한국(1만891달러)보다 32%나 많았다.

지난해에는 1만6768달러로 한국(2만100달러ㆍ잠정 추계)보다 19.9% 적었다.

천 총통 집권 기간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4.1%로 홍콩이나 한국의 5.2~5.7%에 못 미친다.

마 당선자는 선거 TV 토론에서 "중국과의 부실한 관계가 이런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대만 출신으로 올초 세계은행 부총재에 오른 린이푸 베이징대 교수 역시 "중국과 협력을 강화했느냐,하지 않았느냐의 차이가 바로 한국과 대만의 경제 발전 속도가 역전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국공합작이 가시화되면 대만이 재도약할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치한다.

리먼브러더스는 양안 간 경제 협력으로 대만의 성장률이 내년에 6%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크레디리요네(CLSA)는 하루 평균 중국인 관광객 수가 5000명만 돼도 무리 없이 6% 성장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양안 간 직항이 개설될 경우 중국과 대만은 매년 8억1000만대만달러(1대만달러=약 32원)의 화물수송비 절감이 가능해진다.

한국이나 홍콩을 경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만한 돈벌이를 놓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중국의 여행객이 한국이 아닌 대만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도 부담이다.

KOTRA 대만사무소는 양안 경제 협력으로 △산업 분업화에 따른 경쟁력 강화 △중국 자본 유입에 따른 대만 자산시장의 붐 △기술개발 투자 확대 등이 예상된다며 한국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