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지방법원 110호 법정.살인 및 사체은닉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모씨(52ㆍ여)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대구 청주에 이어 세 번째였다.

검찰에 이어 변호인측의 피고인 신문이 시작되자 배심원들이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변호사 김모씨의 목소리가 너무 작고 속사포처럼 빨라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기 때문.변론을 기록하는 법정서기도 알아듣기 힘들었는지 자판을 두드리는 손길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설상가상으로 김 변호사의 사투리까지 곁들여졌다.결국 방청객이 '목소리 좀 크게 하라'고 지적한 뒤에야 마이크를 고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들만의 재판'이 된 데는 검찰도 한몫했다.

검찰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스크린에 파워포인트 화면을 띄워 놓고 범죄혐의를 설명했다.

하지만 배심원들이 보기에는 화면이 너무 작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배심원 중 한 명이 "안보인다"고 지적했으나 검사는 '나중에 평의 과정에서 다시 보면 된다'며 무시해버렸다.

재판부도 나을 것은 없었다.

피고인 신문이 끝나고 증거목록 채택과정에서 변호사와 검찰 간 논쟁이 벌어져 재판이 지연됐으며 그 과정에서 배심원들은 뒷전으로 밀려 10여분간 멀뚱멀뚱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식 배심원제를 차용한 국민참여재판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배심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던 대구 청주 건과 달리 수원재판 건은 운영상 미숙한 점이 많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빨리 말해도,작은 소리로 말해도,'척하면 삼천리'인 재판부만 설득하면 그만이었던 과거 재판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법률지식이 얕은 배심원을 위한 배려가 모자라 벌써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이 대구지방법원에서 처음 열린 이후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수원재판처럼 배심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할 경우 배심원들은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결국 그 피해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 피고인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수원=박민제 사회부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