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은 김모씨(42ㆍ여)가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나중에 '조직검사 슬라이드'가 뒤바뀐 것을 알았다.

김씨는 원래 양성종양인 데 오진으로 인해 암 수술을 받았다며 두 병원에 '과실치상'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측은 슬라이드를 잘못 넘겨준 세브란스 측의 잘못인 데다 악성이 될 위험성이 있는 양성종양을 떼어냈기 때문에 '합당한 진료행위'라고 맞서고 있다.

현재 김씨는 1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서울대병원에 요구,법원의 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를 계기로 유방암 수술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문과 함께 꼭 제거해야 할 악성종양과 그렇지 않은 양성종양의 구분도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주장은 합당한가=병원 측이 밝힌 김씨의 진단명은 개화성 유관 상피성 증식증(florid ductal epitherial hyperplasia) 및 유관내 유두종(intra ductal papilloma)이었다.

이들 양성 종양은 악성 경향이 높지 않고 정상인에 비해 암이 될 확률이 1.5∼2배 정도로 수술의 필요성이 높지 않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국내 유방암 연간 신규 발병률이 인구 10만명(남자 포함)당 22.1명임을 감안하면 무시할수 없는 위험이지만 대학병원급에서 실제로 이들 양성질환이 암이 되는 경우는 1년에 한 두건 찾아볼까 말까할 정도다.

유방암 전문가들은 양성 종양이라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증식성이 있으면 제거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라고 한다.

유관 유두종,경화성 선증,상피증식증 등 암이 될 확률이 정상인의 1.5∼2배에 달하는 양성종양은 물론 교과서적으로 볼 때 현재로선 암과 무관하지만 장차 유방암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섬유낭종성 질환,과오종,방사성 반흔,지방괴사도 정밀검사를 받거나 미리 제거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들이 학회 차원에서 컨센서스를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당성이 확보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병원 측은 유관상피내암(DCIS)과 같은 '0기' 암과 양성종양을 구별하기가 어려운데다 설령 슬라이드가 바뀌지 않았더라도 김씨의 조직이 증식성이어서 암이 될 위험성이 높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방암 조직은 어떤 병리검사 전문의가 봐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슬라이드가 바뀌지 않았다면 김씨가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유방암 치료의 문제점=유방암은 수술만이 확실한 치료이며 항암제나 방사선 요법은 보조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발견 후 3∼4주 이내에 반드시 수술로 치료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암 수술이 가능한 국내 대학병원 교수급 전문의들은 외국의 10배에 가까운 환자를 치료하고 있고 수술을 많이 할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에서 밀려드는 환자들을 대하느라 눈코뜰새 없다보니 김씨의 경우처럼 세심하게 리뷰할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악성화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지만 실제 악성화될 확률이 낮은 양성 유방종양의 경우 어떤 기준으로 수술 여부를 결정할지를 규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유방암과 관련된 유전자인 BRCA1,BRCA2 등이 있는지를 확인한 뒤 존재한다면 수술을 권장하자는 것이다.

한쪽 유방에 암이 생겼을 경우 다른 쪽에도 유방암이 생길 것을 우려해 무작정 절제를 원하는 것도 문제다.

유전성인 경우 다른 쪽 유방으로 암이 퍼질 확률은 80%나 되므로 미리 절제해야 하지만 한국인은 서구인에 비해 유전성이 현저히 낮으므로 유전자 검사나 가족력 조사를 통해 점검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자들은 웬만한 양성종양도 꺼림직하게 여겨 떼어내길 원하고 개원가에서는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하는 환자들을 위해 양성을 악성으로 기록하고 수술해주는 사례를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전문지식을 갖춘 의사를 문외한인 환자가 이기기 힘든 만큼 환자 입장에선 관련한 기초지식을 파악해둘 필요가 크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