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입니까.

다른 곳에 쌓아 둔 건 아니죠?"(정부 단속반원) "저희는 2∼3일마다 가공공장에서 필요한 만큼 철근을 공급받기 때문에 많이 쌓아 두지 않습니다."(B건설사 관계자)

정부가 철근 매점매석 합동단속에 나선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시흥 능곡지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직원들 얼굴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그치듯 이어지는 공무원들의 질문에 돌아온 답은 "여긴 그렇지 않은데요"였다.

현장 직원들이 당황한 이유는 숨기는 게 있어서가 아니었다.

B건설 관계자는 기자에게 "철근값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적치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잘못 나오신 것 같은데요"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공사장 한 켠에 덮인 청색 비닐을 걷어내자 얼마 안 되는 양의 철근이 보일 뿐이었다.

B건설의 다른 관계자는 "공정이 70% 정도 진행된 상태라서 철근이 많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철근이 잔뜩 쌓여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단속에 나섰던 공무원들의 표정은 이내 "이건 아닌데…"로 변해갔다.

"왜 이런 곳에 단속을 나왔나"라는 기자들의 추궁에 공무원들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한 공무원이 해명 아닌 해명에 나섰다.

"사실 오늘은 첫날이고,내일부터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단속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들이 잘 보도해 주시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직접 말은 안 했지만 첫 단속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일요일인 지난 9일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국세청 등 4개 부처 국장들은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매점매석 단속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었다.

하지만 첫 현장 단속은 결국 '어설픈 쇼'와 다름 없이 끝났다.

공직사회에 현장 바람이 부는 가운데 막상 단속을 나왔지만 철근 조달 방식 등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조차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선택한 탓이었다.

공무원들이 빌려 타고 온 9인승 콜밴 대여료(20만원)와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고 말았다.

류시훈 경제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