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미국의 경기침체(Recession)가 현실화되고 있는 데다 국제유가 곡물가 등이 사상 최고치 행진을 하고 있어서다.이런 추세라면 성장이 정체되는 가운데 물가만 뛰는 1970년대 식의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경기침체를 뜻하는 'R의 공포'에 이어 스태그플레이션을 의미하는 'S의 공포'도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이다.미국 경기침체는 달러화 가치 급락을 초래하면서 국제 원자재와 곡물가 강세를 더 부추기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면서 다가오고 있다.당장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 행진 중이다.2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4월 인도분 가격은 배럴당 100.88달러를 기록 사상 최고치로 마감됐다.27일 뉴욕 시간외 거래에선 102달러선마저 돌파했다.

여기에 밀 콩 옥수수 등 농산물값이 폭등하면서 이른바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급등에 따른 물가상승)'도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를 초래하고 있다.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빵의 재료가 되는 밀값은 하루 가격상승 제한폭인 90센트(8%)나 오르면서 부셸당 12.145달러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5월 인도분 콩 가격도 사상 최고를 경신했으며 5월 인도분 옥수수 가격도 1996년 이후 12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콩값은 지난 1년간 91%나 올랐고 옥수수값은 최근 3개월간 40% 뛰었다.

이처럼 유가와 곡물 원자재값이 오르자 각국의 물가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미국의 1월 생산자물가는 작년 동기에 비해 7.4% 상승(전달 대비는 1.0% 상승)해 1981년 이후 27년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지난 1월 소비자물가도 전년에 비해 4.3% 뛰었다.이런 현상을 반영해 피자와 베이글 등 미국인들이 즐겨먹는 식품들의 가격도 최근 25% 급등했다.

비단 미국만이 아니다.유로존의 지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로 14년 만의 최고치였다.중국도 강력한 긴축정책에도 불구하고 1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11년 만의 최고치인 7.1%에 달했다.인플레이션 압력이 전 세계적으로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경기둔화 조짐은 갈수록 확연해지고 있다.미국의 작년 4분기 성장률은 0.6%에 그친 데 이어 올 1분기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주택경기 침체는 갈수록 심화돼 작년 4분기 '케이스-실러 주택 가격지수'는 1년 전에 비해 8.9% 하락했다.20년 만에 최대 하락폭이다.더욱이 소비심리를 나타내는 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75를 기록해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1월 내구재 주문도 27일 예상치를 밑도는 5.3% 감소를 기록했다.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 듯하다"면서 "이번 경기침체는 다른 어느 때보다 길고 힘들 것"으로 진단했다.
글로벌 경제 'S의 공포' 몰려온다
경기둔화 조짐은 유럽과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유로존 15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1.8%로 조정했다.골드만삭스는 일본 경제가 이미 침체에 빠졌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현상을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주장도 상당하다.앨리스 리블린 전 FRB 부의장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때는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으며 실업률도 8%대까지 달했다"며 "지금 상황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고 지적했다.그렇지만 체감적으로 느끼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