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타격을 받은 미국 대형 은행들이 아시아 및 중동 국부펀드로부터 자금 수혈을 받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미국 은행들의 구원 투수로 나서고 있는 이들 나라가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인 미국 주택 버블에도 일조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10년 전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신흥국들은 위기의 재연을 막기 위해 외환 보유액을 쌓는 데 열을 올렸다.외환보유액 재원은 경상수지 흑자와 오일 달러였다.이들에게 달러화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었다.

지난 4년간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누적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조5000억달러에 달했다.이들 국가는 세계의 외환보유액 6조달러 가운데 75%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외환보유액을 기반으로 출범시킨 국부펀드의 자산 규모만도 2조5000억달러에 달한다.이들 개발도상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는 세계 금융 시스템에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에서 국채 수익률(금리)이 하락했다.또 이들이 외환보유액 운용을 위해 미국 국채에 대한 투자를 늘린 것도 국채 수익률 하락을 부채질했다.

이 같은 국채 수익률 하락은 미국의 부동산 붐을 이끌었다.낮은 국채 수익률에 숨이 막힌 투자자와 금융사들의 투자 자금이 고수익을 좇아 부동산으로 대거 옮겨갔기 때문이다.또 은행들은 고금리를 챙길 수 있는 서브프라임에 무분별하게 대출을 단행했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최근 금융 위기의 주객이 20세기와는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20세기 금융 위기는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했다.선진국 투자 자금의 이탈이 이들 개발도상국의 금융 위기를 촉발했다.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면 해당국 통화 가치는 추락하고 금리는 치솟았으며 기업 및 금융사는 도산 위기에 몰렸다.

최근 국제 금융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서방 선진국에서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이 세계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18%에서 작년엔 29%로 증가했다.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세계 경제의 균형 변화가 확연해지고 있지만 세계 기구의 지배 구조에 미치는 파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예컨대 통화 문제를 포함,국제경제 문제에 대한 주요국 간 협조를 위해 창설된 G7은 4개의 유럽 국가(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미국 캐나다 일본 등으로 구성돼 있다.아직 세계 경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힘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G7에서 유럽의 자리는 하나로 축소돼야 한다.대신 남은 세 자리를 중국 인도와 아프리카 1개국에 할당해야 한다.물론 이 같은 세계 기구의 지배 구조 변화에 대한 유럽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반영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G7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쓸모없는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정리=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

◇이 글은 미국 시카고의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해일 해일어드바이저 및 차이나 온라인 회장이 'Brave New Economy'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