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재개하자며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다.

22일엔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한국 특파원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25일로 예정된 양국 정상회담에서 협상 재개를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관련,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는 "큰 틀에서 양 정상이 협상을 재개하는 데 합의할 것"이라며 "다만 세부적인 협상 일정은 면밀한 실무 검토를 거쳐 추가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FTA 협상 재개는 시점이 문제일 뿐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FTA와 비교할 때 우리의 실익이 상대적으로 적은 한.일 FTA 협상이 순탄하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통상 전문가들은 "일본이 농산품 등에서 과거 협상 때와는 다른 전향적인 개방안을 내놓아야 유의미한 협상이 될 수 있다"면서 새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농산품 개방 폭이 관건

2003년 11월 시작된 한.일 FTA 협상은 6차례의 공식 협상 끝에 2004년 12월 중단됐다.

표면적으로는 우리의 최대 관심품목인 농수산품에 대한 일본의 개방 수준이 품목 수와 교역액 기준으로 50%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측은 90% 수준의 개방을 요구했다.

여기에 우리 측이 기대했던 기술이전,비관세 장벽 등의 분야에서도 일본은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고집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자동차 등 공산품 분야에서는 우리의 개방을 요구했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정부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우리가 원했던 것이 100이었다면 일본은 20만 내놓고 더 이상 협상은 없다는 식으로 요지부동이었다"면서 "그래서 협상을 더 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측은 당시 그 정도의 개방 수준으로는 한.일 FTA 협상 자체가 어렵다고 보고 일본 측에 수정안을 요청했지만 4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협상은 하반기나 가능할 듯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에 맞춰 일본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은 일종의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 EU 등 거대 경제권과 FTA를 타결했거나 타결을 앞둔 유일한 나라인 한국이 중국과도 산.관.학 공동연구를 통한 FTA 가능성 검토에 나서자 다급해진 일본이 다시 한.일 FTA에 관심을 보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일본은 한국은 물론 아세안과의 협상에서도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 고집하는 태도로 일관해왔다"면서 "상호 호혜적인 FTA를 추진하려는 조짐이 일본에서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덥석 일본 측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의 분위기도 지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과의 교역에서 200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보고 있는 일본이 '윈-윈(win-win)'이라는 FTA의 원칙에 맞는 자세를 보인다면 언제라도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협상을 시작할 경우 또다시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본의 태도변화로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상반기 내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우리 측은 한.EU FTA를 포함해 5개의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상반기 중 한.EU FTA 협상이 타결되면 일본과의 협상은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류시훈/이준혁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