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을 앞둔 국내 경제에 먹구름만 몰려오고 있다.국제금융 시장의 혼란과 미국발(發) 세계경제 침체 우려로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등 불안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원자재들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에나 볼 수 있었던 일인데,물가급등 속 경기침체를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온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국제 원자재값 급등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는 등 소비자물가 불안이 현실화되고 있는 데다 경기 하강 압력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도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점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내 경제는 아직까지 침체 상황에 빠진 것은 아니다.물가가 뛰고 있지만 경기 지표는 괜찮기 때문이다.경기 침체라고 부를 정도가 되려면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 하는데,작년 4분기 우리 경제는 전년 동기 대비 5.5%의 '깜짝성장'을 달성했다.수출과 설비투자가 호조를 보인 덕분이다.

문제는 앞으로다.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지속되면서 미국이 'R(경기침체를 의미하는 Recession의 첫 글자)의 공포'에 빠져든 데다 세계경제의 또 다른 엔진 역할을 해온 중국 경제도 성장률이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세계 경제의 양대축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이 흔들리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이미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기 시작했다.


◆물가 급등 불가피할 듯

물가는 이미 비상등이 켜졌다.최근 물가지표는 한은마저 충격에 빠질 정도다.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9%로 한은의 물가관리범위(2.5~3.5%)를 넘었고 수입물가 상승률은 21.2%로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수입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지금 추세라면 소비자물가가 조만간 4%를 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문제는 통화당국이 지금의 물가 상승을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물가상승 압력이 공급측면과 수요측면 양쪽에서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어서다.공급측면에선 원유와 농산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게 가장 심각한 요인이다.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 경제로선 원자재값 급등의 충격을 고스란히 국내에서 떠안아야 한다.

여기에다 과거 전 세계 물가안정에 기여하던 중국이 최근 물가급등을 겪으면서 '인플레이션 수출국'으로 바뀌고 있다.수요측면에선 최근 1~2년간 국내 경기상승 효과가 뒤늦게 반영되고 있는데다 시중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물가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다.물가는 방향성이 있다.한번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자꾸 오를 것이란 불안감에 빠진다.식료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특히 인플레 기대심리가 확산되면 노조의 힘이 센 우리나라에선 임금인상 요구가 봇물을 이룰 수 있다.인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을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하락 가능성 커졌다"

한은이 경기 하강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경기 부양을 위해 선뜻 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물가지표가 걱정스러운 상황에서 인플레 기대심리마저 확산된다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일 이성태 한은 총재와 주요 연구기관 및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월례 경제동향간담회에서도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복잡한 상황이 심각하게 논의됐다.참석자들은 "우리 경제가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경기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성장의 하방 위험이 커지는 가운데 물가가 높은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또 "물가 측면에선 고유가 등 공급측 상승압력을 계속 주시하는 한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