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투자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로 풀이 죽어 있지만 기후변화 관련 부서는 바빴다.환경 관련 상품개발 및 판매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맨해튼에 있는 크레디트 스위스 에너지의 폴 이즈킬 이사를 만난 것은 오전 11시. 이미 러시아 파트너와 회의를 끝낸 뒤였다. "지난 1주일간 아부다비 두바이 다보스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지난해 온실가스배출 감소 프로젝트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에코시큐리티의 지분 9.9%를 취득하는 등 환경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환경 관련 금융상품이 각광받고 있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폭염이나 홍수 같은 이상기후에 따른 재앙을 보전받기위한 날씨 관련 선물상품이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거래되는 정도였다.지금은 웬만한 투자은행들이 친환경기업에 투자하는 이른바 에코 펀드(Eco fund)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에코 펀드의 투자처는 다양하다.태양광이나 풍력,바이오 연료 같은 대체에너지 개발회사에 대한 투자부터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기업,탄소배출저감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기업,깨끗한 물을 생산하는 회사,오염관리 회사에 이르기까지 친환경 기업 모두가 투자 대상이다.개도국의 이산화탄소배출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거나 탄소배출권을 매입하는 '탄소펀드'도 여기에 포함된다.

펀드의 종류나 규모는 추산하기 어렵지만 급증세다.시장조사회사인 리퍼 페리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환경 관련 주식형펀드에만 지난해 1~9월 80억달러가 모였다. 2006년 한 해 모집한 40억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민간펀드로 가장 큰 것은 영국의 소규모 투자은행인 기후변화캐피털(CCC)이 운영하는 8억3000만달러짜리 탄소펀드. 곧 10억달러 이상으로 키울 예정이다.

투자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JP모건은 지난해 기후변화에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는 회사가 발행한 채권으로 구성된 지수를 개발했다.ABN암로도 탄소감축 및 청정 물 공급 회사 주가를 토대로 한 환경지수를 개발했다. 미국에서 '그린 구글'(구글 같은 성공을 꿈꾸는 친환경기업)이 되겠다는 청정에너지 관련 벤처기업의 공개규모도 2005년 43억달러에서 2006년 103억달러로 급증했다.

보험사도 빠지지 않는다.AIG는 2006년 5월 환경 및 기후변화 부서를 만들고 산업계가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중국의 관개사업에 참여했고 고비사막의 식목사업에도 투자했다. 알리안츠는 글로벌 에코트렌드 펀드를 곧 출시한다.

관심은 펀드의 수익률. 정확한 통계를 제시하는 곳이 별로 없다.그나마 펀드의 수익률을 유추할 수 있는 게 친환경 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털의 투자 실적과 수익성이다.미국의 대표적인 태양광기업인 퍼스트 솔라의 경우 주가가 지난 한 해 25달러에서 215달러로 무려 8배 올랐다.톰슨데이터 스트림이 태양광,풍력,바이오 연료 기업 6개의 주가를 추적한 결과 2006~07년 200%나 올랐다. 하지만 친환경벤처가 모두 퍼스트 솔라처럼 대박을 터트릴 수 없고 올 들어 관련 주식 값도 고개를 숙이기 시작,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과도한 투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석유값이 폭락하면 친환경 관련 투자가 쪽박을 찰 수밖에 없는 데도 무모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그럴 경우 에코 펀드 역시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타임지는 그러나 최근 '비즈니스와 환경'이라는 특집기사에서 중국과 인도의 에너지 수요를 감안하면 석유값이 폭락하기 어렵고 각국이 배출가스 제한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에 청정에너지 기술개발은 필수적이며 그런 기업에 대한 투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헤지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가의 한 전문가는 운용자산이 많은 투자자일수록 대체수단의 하나로 에코펀드를 선호한다며 포트폴리오 중 10%는 환경 관련 금융상품으로 짜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지난주 뉴욕 유엔본부에서는 투자자총회가 열렸다.기관투자가, 연금,주요 기업의 경영자 500여명이 참석,투자자 입장에서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집중 논의했다.이 자리에서도 에코 펀드의 수익성에 관한 의문들이 제기됐다.그러나 매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는 화석연료 이외의 다양한 에너지를 개발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 10년간 두자릿수의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보고서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투자은행 중에선 씨티의 환경 관련 사업이 주목을 끌고 있다.지난해 씨티는 앞으로 10년간 기후변화 대응에 5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청정에너지 및 대체에너지 기술 부문에 대한 투자 310억달러,전 세계 씨티 건물의 그린화를 위한 지출 100억달러, 학교 병원 등 공공건물의 에너지효율개선 및 NGO(비정부기구)와의 협력 등에 60억달러를 쏟기로 한 것이다.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씨티재단의 파멜라 플래허티 이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기후변화는 모든 산업에 전략적 이슈로 부상했다"며 "씨티가 기후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잠재적 고객들에게 이 분야에 관심이 많고 전문성도 있다는 점을 인식시킬 수 있다"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그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만드는 금융상품도 다른 상품과 똑같이 위험이 크면 수익도 크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뉴욕.런던.웨이번(캐나다).네이멍구(중국)=박성완/장경영/김유미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