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고 잘 읽는 건 '반쪽 영어'

자기 생각 쓰고 말할 줄 알아야

한국인들은 외국인만 만나면 얼굴이 빨개지고 숨으려 한다.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지레 겁을 먹고 피하는 것이다.예전에는 더 심했다.당시에는 영어 교육이 읽기와 문법 위주의 주입식이었기 때문이다.영어 지문을 술술 읽고 영작도 제법 했으나 외국인 앞에만 서면 벙어리가 되는 것이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 전 많은 한국인들이 읽기와 쓰기에도 약하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한국인이 자신있게 쓴 영어 글이 무슨 말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대부분의 한국인이 중학교 시절부터 최소 10년간 영어를 배운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는 심각한 일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영어 학습법부터 바꿔야 한다.미국 학생들은 저학년부터 발표와 토론을 많이 한다.초등학생 때부터 선생님과 자유롭게 토론한다.학년이 높아질수록 토론과 발표의 질이 높아지며 발표도 유창해진다.쓰기도 말하기만큼 중요하다.중학교부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짧은 에세이를 써야 하고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면 연구 논문도 쓴다.대학에 입학하면 2학기에 걸쳐 글쓰기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 한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한 원어민 강사는 "한국은 학생뿐만 아니라 기업인,교수들까지 글쓰기 수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나는 한국의 영어교육 시스템이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능력을 모두 강조하는 방향으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건의한다.쓰기 능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다.영어 학습법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응시하는 영어시험인 TOEIC의 경우 기존의 듣기,읽기 평가에서 말하기와 쓰기 평가를 추가했다.삼성 등 주요 대기업들은 이 시험을 도입,직원들의 영어 실무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한다.우리 사회의 관심이 그만큼 높으며 영어 학습방법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다.

학교와 기업,교육 당국이 하나가 되어야 한국의 영어교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한국은 다년간 독해와 문법 교육에 집중해 왔다.또 한국인들은 영어 말하기와 쓰기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앞으로 각 주체들이 하나가 돼 영어 네 영역을 균형있게 조화시킨다면 한국인의 영어 능력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김린 교수.선문대 외국어교육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