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대구지방법원 형사 11호 법정.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여동생이 증인석에 등장하자 법정이 술렁거렸다.

생후 1년이 채 안 된 갓난 아기를 안고 증인석에 앉았기 때문.여동생은 이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사채업자들이 돈을 갚으라며 유일한 혈육인 자신을 위협한 상황을 애절하게 설명해 갔다.

증언 간간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배심원들은 미혼모인 여동생이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라며 울먹이자 안쓰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한민국 사법 사상 최초로 일반인이 재판에 참여한 국민참여 재판의 한 장면이다.첫 출발은 일단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배심원으로 참가했거나 방청했던 사람들에겐 그동안 어렵고 복잡한 '그들만의 세계'라고 느꼈던 재판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참가자들의 준법 의식까지 높아진 모습이다.배심원이었던 김진철씨는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실제 재판 과정에 참여해 보니 우리나라 사법제도를 신뢰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재판을 방청한 전명재씨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재판에 국민이 참여해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을 보니 좋았다"며 "참여할 기회가 내게도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법과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하는 사법부의 판단이 감성적 요인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인 판사야 감정적인 호소에 어느 정도 면역이 돼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눈물로 호소하는 피고인을 매몰차게 외면하기 어려운 게 인지상정이다.변호사는 그런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피고인은 70대 할머니의 집에 들어가 칼로 얼굴을 긋고 주먹으로 수차례 폭행했지만 결국 변호사는 배심원단으로부터 집행유예 평결을 이끌어냈다.

유·무죄 판단과 양형 의견을 헷갈려 한 것은 배심원들뿐 아니라 재판부도 마찬가지였다.배심원단의 집행유예 결정에 대해 법조계에선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씨의 변호를 맡았던 전정호 변호사도 "배심 재판이 이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러다간 웬만해선 모두 배심 재판을 신청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보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박민제 사회부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