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숭례문 화재 현장에 기자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15분.당시만해도 겉에서 보이는 불길은 없었고,2층 누각에서 흰 연기만 자욱히 올라왔다.

목격자 이상권씨(45ㆍ택시기사)가 오후 8시46분께 봤다고 증언한 '불꽃놀이'같은 시뻘건 불길은 사라진 뒤였다.

그래서인지 소방차 두 대만 누각 위로 물을 뿌리고 있었고 소방관 30여명은 현장을 둘러봤다.

현장에 있던 경찰은 "누각에서 라이터 두 개를 발견했고,기와와 목재 사이에 불이 붙어 속으로 물을 쏴야 하는데 진화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불이 크게 나진 않았다"며 안심시켰다.

화재의 원인에 대해선 "외부인의 침입시 울리도록 돼 있는 무인감시장치가 울리지 않아 방화범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잠입을 몰랐다"며 "관리를 맡고 있는 문화재관리청 관계자들이 지금 대전에서 올라오는 중"이라며 문화재청의 늑장 대응을 비난했다.

하지만 목격자 이씨는 경찰도 제때 대처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확히 오후 8시46분 불이 났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를 무시해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며 "지금도 방화범이 현장을 지켜볼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찰은 "그럼 범인을 잡지 그랬냐"며 다그쳤다.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던 이씨는 "방화범을 쫓아 주변을 뒤졌지만 놓쳤다"며 "경찰이 처음부터 신고를 무시하지만 않았어도 잡았을 것"이라며 되받아쳤다.

화재 발생 1시간째 겉보기에 화재는 웬만큼 진압된 듯했다.

그러나 누각 안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한 소방관은 "지붕을 뜯지 않으면 절대 불을 못 끈다"며 "문화재청이 결단을 못 내린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문화재청 관계자 3명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전문가가 아니다"며 "대전에서 전문가가 올라오고 있다"고 발뺌했다.

화재 발생 3시간째인 오후 11시께.정부 당국자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결국 새벽 2시5분께 숭례문은 까맣게 타 무너져 내렸다.

대한민국의 상징이요,자존심이 화마에 휩싸여 급박했던 6시간 동안 경찰도,문화재청도,소방방재청도 손 한번 제대로 못쓴 채 '600년의 보물'을 잃었다.

성선화 사회부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