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전격인하하자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장은 일단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콜금리 인상은 완전히 물건너갔다는 분위기다.

오히려 내달 금통위에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를 두는 시각이 늘고 있다.


◆딜레마에 빠진 한은

한은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속단하기 힘들다.

일단 금리 인하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는 최선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미국에 이어 캐나다 중앙은행이 곧바로 금리를 0.25%포인트 내렸고 영국과 유럽중앙은행(ECB)도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지난 22일 공개된 작년 12월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위원들의 관심은 물가보다 경기 침체 우려였다.

한 금통위원은 "현재 물가안정을 위해 선제적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까지 말했다.

당장 콜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미 간 정책금리가 3년2개월 만에 최대인 1.5%포인트로 벌어진 것도 금리 인하의 명분이 될 수 있다.

한·미 간 금리 차이를 노린 외국인의 채권 매입이 늘어 유동성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물가 불안 만만치 않아

그렇다고 한은이 선뜻 금리를 내린다는 것도 쉽지 않다.

물가 불안 탓이다.

올해 소비자물가가 한은의 물가관리범위(2.5~3.5%)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가는 뒷감당이 어려울 수 있어서다.

이미 지난 1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3.6% 올랐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당분간 3%대 후반을 맴돌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통화정책은 한번 방향을 잡으면 다시 방향을 돌려 잡기가 어렵다.

경기가 확실히 둔화된다는 판단이 서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 인하로 선회하기는 힘들다는 것.이성태 한은 총채도 23일 금융연구소장들과의 월례 경제동향간담회 직후 "국내 경기는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물가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는 원론적 인식을 밝히는 데 그쳤다.

통화정책에 대한 어떤 '시그널'도 제시하지 않은 셈이다.


◆시장은 이미 인하에 '몰빵'

채권시장은 한은이 적어도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공동락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당초 2분기 중 콜금리 인상을 예상했지만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워졌다"며 "상반기 중에는 콜금리가 동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한은이 결국 금리 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철수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은이 2분기부터 글로벌 금리 인하 흐름에 동참해 두 차례 정도(총 0.5%포인트) 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은 2001년 7월에도 '당장 인플레 압력이 있지만 경기 위축으로 머지않아 인플레 압력이 진정될 것'이란 논리를 내세우며 금리를 내린 적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채권금리도 미국의 금리인하와 한은의 콜금리 인하 가능성으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

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0.25%포인트 떨어진 연 5.05%,5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0.2%포인트 내린 연 5.16%에 거래를 마쳤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