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방미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 중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22일(현지시간) 낮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전격 면담했다.

정 의원이 백악관에서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 보좌관을 만나고 있는 사이 부시 대통령이 해들리의 사무실을 '잠깐 들르는(drop by)' 형식으로 이뤄진 비공식 면담이었지만 회동 시간이 20분에 달했을 정도로 비중 있는 자리였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를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23일 오후엔 딕 체니 부통령까지 정 의원을 공식 면담할 예정이어서 외교가에서는 파격적인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처럼 전례 없는 외교 행보를 보인 것은 임기 내 외교적 성과를 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보수 정권 탄생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기대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부시 대통령은 면담에서 "이 당선인이 가급적 이른 시일 내,편리한 시기에 미국을 방문하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에 정 의원은 "이 당선인도 부시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길 기대한다"고 제의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오는 7월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G8(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방문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선인의 방미는 국빈 방문 형식도 검토되고 있지만 그보다는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의 회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은 또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 공조가 필요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비준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면담이 끝난 뒤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부시 대통령이 이 당선인의 친서에 대해 사의를 표명하면서 여러 가지 긍정적인 말씀을 했다"며 "정말 부담감이나 격의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한.미 관계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고 전했다.

정 의원은 또 부시 대통령이 특사 자격인 자신을 면담한 것은 한.미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과 이 당선인의 골프 회동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정 특사 일행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요즘 골프를 잘 치지 않는다며 한.미 정상 간 골프 회동이 어려울 것임을 완곡하게 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으로 현지에 파견된 미군들이 희생과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골프를 칠 수는 없다"며 최근 골프를 치지 않는 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