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

새 정부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인수위의 조직개편안도 공개됐고,자율과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정책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창조적 실용주의를 통해 경제를 살리고 국격(國格)을 높이기 위해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는 조직개편은 꼭 필요하다.그러나 과학기술과 교육을 살리는 일이 경제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인식이 분명하게 반영돼야 한다.교육과 과학기술을 함께 살려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특히 우리처럼 인문사회 분야가 압도하는 사회에서는 그런 인식이 더욱 절실하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총괄과 조정 업무를 인재 양성 업무와 결합시켜서 신설될 '교육과학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이는 일본의 문부과학성처럼 아직도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의 물리적 결합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경우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교육과학부의 진정한 성공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자율과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을 확실하게 실현하기 위한 교육개혁의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그래야만 현재 교육부의 거대 권한과 조직을 획기적으로 축소하고,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새로 생기는 교육과학부가 지금처럼 규제 위주의 교육 현안에서 허덕일 경우 자칫 교육도 망치고,과학기술도 망치는 어리석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대학입시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과 혼란을 가능하면 빨리 정리하고,무너져버린 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무엇보다도 학교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분명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학교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가정과 사회의 역할이 충분히 강조돼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불합리한 선택중심의 교육과정과 쉽고 재미있는 것만 가르치겠다는 황당한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교육과정은 과감하게 폐기해야 한다.학교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내용을 확실하게 가려내서 충분히 가르치겠다는 소신이 필요하다.물론 수학과 과학은 모든 학생에게 필요한 필수 과목이다.

또한 기초연구와 원천기술 개발을 분명하게 분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융합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재의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기도 하다.더욱이 원천기술 개발은 과학자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상향식 지원 정책을 통해서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그래서 원천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출연연 관리는 특성이 유사한 기초연구와 함께 교육과학부에 맡기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최근에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핵융합 연구와 우주 개발과 같은 거대과학 사업도 마찬가지다.거대과학 사업은 단기적인 이익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초과학과 닮은 점이 더 많다.지식경제부는 본래의 취지대로 산업정책에만 전념하는 것이 마땅하다.

교육과학부의 연구지원 사업에 대한 인식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연구지원 사업은 분야에 따라 그 성격,특성,평가방식 등의 모든 면이 달라진다.그런 특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 현재의 학술진흥재단과 과학재단을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분야로 특화시키고,상호 견제와 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어렵게 제시된 조직개편안에 대한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공교육과 과학기술을 함께 살려 낼 수 있는 묘책을 찾아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