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치러진 주요 대학의 논술고사가 고등학교 공교육의 범위를 넘어설 만큼 어렵게 출제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 등 일부 대학의 자연계 논술은 함수와 미적분 등 수학 개념의 풀이 과정과 답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해 '과거의 본고사 유형과 다를 것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이명박 당선인은 인수위 브리핑을 통해 '교과서만 봐도 대학에 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도 대학갈 수 있겠다. 딱 봤을 때 무릎을 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안을 생각해 내라'고 주문했다. 대학 입시가 고등학교 공교육과 유리되는 일만은 막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차기 정부가 지향하는 '대입 자율화'의 틀은 유지하면서 공교육의 정상화도 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일선 교사들이 더 많은 학력 정보를 대학에 제공하고 논술의 출제 과정에도 참여할 경우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8학년도 정시 논술문제가 어렵게 보이는 이유는 여러 과목의 지식을 두루 알고 있어야 풀 수 있는 이른바 '통합교과형 문제'가 주로 출제됐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치러진 서울대 자연계열 논술고사가 대표적인 예다. 서울대 논술고사에서는 화학,생물,물리,수학 등 4개 과목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야 풀 수 있는 문제(2번 문항)도 나왔다.

대학들이 통합교과형 문제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여러 영역의 지식을 융합할 줄 아는 인재의 양성이 세계적인 교육 흐름인 만큼 학생에 대한 평가도 통합교과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일선 대학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문제는 통합교과형 문제를 일선 학교에서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현재 대부분의 학교들은 국어과 교사가 단독으로 논술을 담당한다. 국어교사는 역사,사회 등 다른 과목과 관련된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글을 잘 쓰는 방법은 가르칠 수 있지만 통합교과형 문제에 대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여러 과목의 교사들이 팀을 이뤄 논술을 가르치는 '팀티칭'을 제도화해야 통합 논술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선 고교의 국어교사 출신인 이만기 유웨이에듀 평가실장은 "일선 학교 교사들이 통합형 논술을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며 "여러 과목의 교사가 협력해 통합 논술을 지도하는 '팀티칭'은 실제 여러 학교에서 시도하고 있는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학원이 아닌 고교에서 논술 교육이 이뤄지기 위한 또 하나의 조건은 일선 대학이 논술시험의 난이도를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일선 고교의 커리큘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교수들만으로 출제진이 구성되다 보니 지나치게 어려운 지문을 논술 문제로 활용하는 일이 많은데 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완영 경희대 입학처장은 "대학에서 논술을 고등학교 교과 과정 내에서 출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대학과 고교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교사를 논술 출제위원으로 위촉하는 방법 등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흥안 건국대 입학처장은 "교과서에 있는 국문ㆍ영문 지문을 활용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개별 대학의 입학사정관에게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내신제도를 개편해야 논술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교에서 과목별로 수준별 수업을 벌이고 내신 평가도 수업의 수준에 맞춰 다양한 난이도로 실시하면 입학사정관들이 시험의 난이도와 성적을 복합적으로 감안해 학생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송형석/성선화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