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야 다다시 < 도쿄대 교수·한국정치외교 >

한국의 이번 대선은 10월 초 남북정상회담 직후부터 본격화됐다.

여당은 대북(對北) 정책을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한나라당이 쟁점화를 막기 위해 선거 초반 대북정책 방향을 실용적으로 수정했기 때문이다.

그 같은 정책 수정에 대해 이회창씨는 '북한에 너무 유화적인 데다 여당과 큰 차이가 없다'고 비판하며 뒤늦게 대선후보로 출마까지 했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의 대북정책 변경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란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심어주는 데 효과적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 대(對) 진보의 대립축 중 하나는 대북정책이다.

10년 만에 진보로부터 보수로 정권이 바뀌기 때문에 대북정책도 크게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북정책에 관한 한 한국 정부의 선택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다.

남북관계 속에 한국이 처한 구조적 조건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남북간 힘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았을 때는 대북정책의 목표가 북한에 대한 힘의 우위를 확실하게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북한의 힘 격차가 역전불가능하게 벌어졌다는 인식이 공유됐을 때는 한국 우위상황을 여건으로 북한을 평화공존의 틀 속으로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최우선 목표는 군사적 긴장고조를 예방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있다.

그래야 한국 우위의 점진적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명박 당선자는 선거운동기간 중 대북정책 등 외교정책에 대해 언급을 많이 하지 않았다.

자기 '전공분야'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다만 외교정책에서도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자세는 엿보인다.

북한 사회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공약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을 관철시키면 북한에 대한 상호주의 요구가 좀 거세질지 모른다.

하지만 정책기조는 북핵문제를 6자회담 틀속에서 풀면서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 증대를 노리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북한을 둘러싼 이해(利害)에 관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당사국들 사이에 그다지 큰 괴리가 생기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또 그렇지 않도록 한국이 외교를 펼쳐 나가야 한다.

문제는 그 같은 구조가 흔들렸을 때다.

예컨대 북ㆍ미 관계 진전이 정체됐을 때 과연 새 대통령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등의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5년간의 정치업적에 대해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결과적으로 미국 부시 행정부의 정책방향을 한국이 바라는 쪽으로 끌어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만큼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일관성을 잃지 않았다.

이명박 당선자의 외교정책은 보다 유연성을 지닐 것이다.

유연성을 가진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를 갖고 북한을 얼마만큼 설득시킬 수 있는지,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를 주변 국가들로부터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지는 외교력이 좌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ㆍ일 관계를 보자.일본 측에서는 한ㆍ일 관계 개선은 노무현 정부에선 불가능하고,다음 정권이 돼야 가능하다는 관측이 많았다.

따라서 이명박 당선자는 지금까지 불필요한 정도로 냉각됐던 한ㆍ일 관계를 셔틀외교 부활 등을 통해 개선할 것으로 본다.

물론 정권이 바뀌었다고 한ㆍ일 간 쌓여 있는 여러 문제들이 쉽게 풀리는 건 아니다.

낙관은 금물이다.

특히 대북정책과 관련,일본에선 이명박 정권이 되면 한ㆍ일 간 괴리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없지 않다.

한국 정부는 오히려 일본의 대북정책이 달라질 것을 기대할 것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ㆍ일 간의 갈등은 어느 정도 계속될 것으로 본다.

이명박 당선자는 일본 정부와의 신뢰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대북정책에 관해 일본 정부나 사회를 설득시킬 수 있는 외교력을 보여야 한다.

정리=차병석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