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나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같은 갱 영화의 고전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자들의 선굵은 인생을 거친 질감으로 보여줬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잘 잊혀지지 않는 잔영을 남기고 있는 이유다.

'21세기의 대부'라는 평가와 함께 갱스터 영화의 또 다른 고전이 될 것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품이 연말 극장가를 찾는다.

오는 27일 개봉되는 '아메리칸 갱스터'다.

'블레이드 러너''글래디에이터'를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두 배우 덴젤 워싱턴과 러셀 크로 등 할리우드 특급 감독과 배우들이 만나서 만든 영화로 지난달 미국 유럽 전역에서 개봉돼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

골든글러브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으며 아카데미 주요 부문상을 휩쓸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 영화의 성격은 기름을 뒤집어쓴 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나오는 첫 장면에서부터 가늠할 수 있다.

정보만 캐내고 살려주거나 같은 편으로 만드는 것이 갱 영화의 일반적 패턴이었다.

하지만 관객들의 예상을 비웃듯 '아메리칸 갱스터'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담뱃불을 던지고 총까지 쏜다.

이 갱스터의 이름은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1970년대 뉴욕의 암흑가를 주름잡던 마약보스로 실존 인물이다.

프랭크는 동남아에서 순도 높은 마약을 직접 들여오면서 흑인으로서는 유래없이 마약시장을 장악한다.

그는 경찰의 부정부패가 당연시 되던 당시에도 강직함을 지키는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의 타깃이 된다.

대부분의 뛰어난 갱 영화가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선과 악'의 대결 구도를 채택하지 않는다.

프랭크는 가족을 끔찍히 사랑하는 기독교 신자이긴 하지만 대낮 대로변에서도 사람 머리에 총구멍을 낼 수 있는 냉혹한 인물.그가 파는 마약 때문에 수천명의 희생자가 속출한다.

그를 뒤쫓는 리치도 선을 대변할 만큼 완벽한 인물은 아니다.

그대로 '꿀꺽'할 수 있는 100만달러를 포기하는 소신을 갖고 있는 반면 바람을 자주 피워 이혼 위기에 몰려 있다.

그럼에도 두 남자의 삶을 그려가는 2시간36분의 상영 시간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이 영화에서 권선징악의 교훈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관객들은 '이런 남자도,저런 인생도 있었다'는 사실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1억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재연한 1970년대의 사실적인 뉴욕풍경과 스타일리시한 패션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물론 두 명배우의 무게감 있는 연기와 거장의 연출 만큼은 아니지만….코미디나 멜로 등 달콤한 밀크커피류의 영화코드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오랜만에 에스프레소 커피의 강렬한 맛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청소년 관람불가.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