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임금동결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지난 4월 전남 여수시 한국바스프㈜ 여수공장 대회의실.이 공장 김현열 노조위원장(40)이 대의원 투표 결과를 발표하자 회의실내 조합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이 자리에서 김위원장은 "이제 노조의 이익만 생각하는 노조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회사를 살리는 상생의 노조가 되자"고 외쳤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이 공장 노조는 여수산단내 민노총산하 조합들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던 강성노조였다.

더구나 지난해 회사가 130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등 최근 몇 년간 사상 초유의 흑자 행진을 거듭해온 상황이어서 노조의 자발적 임금동결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한때 10%가 넘는 임금인상을 끌어내고 지난 2004년에는 9일간의 전면 파업을 벌이기도 했던 노조의 강경노선이 이처럼 바뀐 까닭은 무엇일까.

노조가 변하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외국인투자기업인 바스프 독일 본사는 지난해 7월 중국 상하이 인근 카오징에 여수공장과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가동시켰다.

여수공장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생산시설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스프 본사가 지난 3월말 라이신(사료용 단백질)을 생산해온 군산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해 190명의 조합원이 일자리를 잃는 일이 생겼다.

김 위원장은 "설마 했는데 정말로 (바스프 본사가) 발을 빼버렸다"며 "노조만의 이익을 위해 근시안적으로 싸우다가는 밥그릇을 잃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조합원들의 인식변화에는 이들을 진정한 파트너로 생각하는 회사에 대한 신뢰도 크게 작용했다.

회사는 지난 2003년부터 '신노사문화 마스터플랜'을 도입해 운영해왔다.

이에 따라 노사 각 2명씩 노사파트너십 교육에 참여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왔다.

특히 투명성을 강조한 열린 경영체계를 구축,노동조합을 진정한 경영파트너로 인정함으로써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회사의 각종 경영정보는 사보, 홈페이지,공장소식지, 회사속보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직원들과 공유되고 있다.

비전 2020 워크샵,노조간부수련회,간담회,노사비전 위원회 등 노사간 다양한 만남들은 노사간 벽을 허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동문 사장(47)는 "중장기 노사발전 마스터플랜으로 과거 3년간 협력적인 노사관계 구축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면서 "이 같은 긍정적인 변화가 지속적인 성장과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노사가 화합하면서 여수공장은 요즘 많은 시너지효과를 누리고 있다.

회사의 매출액이 매년 상승하는 가운데 근로자들도 동종업계 최고수준의 근로조건과 성과급을 누리고 있다.

지난 2년간 1인당 평균 1000만원내외의 연말성과급을 받아들어 여수산단내 타업체 근로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특히 여수공장에는 노사화합의 모델로 벤치마킹하는 국내외의 발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6월에는 노사화합에 주목한 독일본사 경영진들이 여수공장에 6300만달러규모의 투자를 결정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여수=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