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쥐는 곤경에 처했을 때 지혜롭게 위기를 극복하는 영리한 동물로 묘사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12간지 풀이를 보면 "쥐띠들은 위험 감지에 뛰어나고 적응력이 강하다"고 표현돼 있다.

2008년 쥐띠해(戊子年)를 맞는 기업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기름값(油價)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며 인건비와 함께 막대한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수출 채산성도 맞추기 힘들어졌다.

여기에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사태로 자금줄이 마르고 금리가 치솟으면서 기업들은 혹시 유동성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12월 대선에 이어 내년 4월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 점도 기업들엔 부담이다.

'정치판'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기업 관련 정책이나 여론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기 때문.최근의 삼성 특검법 발효에서도 이미 목격했 듯이 말이다.

이렇게 쥐띠해를 앞두고 우리 기업들이 처한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위기를 영리하게 헤쳐나가는 쥐의 지혜를 배워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8년 '쥐의 지혜'가 가장 필요한 기업은 단연 삼성그룹이다.

전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조성 및 고위층 로비 의혹 제기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으니 말이다.

삼성은 우선 검찰이나 특검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면서 경영 차질을 최소화하는 '정공법'으로 위기에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초 시작한 비상경영체제를 계속 유지해 내실을 기하면서도,앞으로 삼성을 먹여 살릴 신성장동력을 찾는 일은 절대로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시간의 70%를 신사업 구상에 쏟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이 지켜온 근본 경쟁력을 잃지 않는 것만이 위기를 극복하는 최고의 지혜"라고 말했다.

삼성에 비하면 LG그룹은 다소 여유있어 보인다.

올 한 해 주력 계열사들이 모두 큰 폭의 실적 호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구본무 회장은 틈만 나면 "실적 회복은 시황 등 외부 변수가 개선된 탓이 크다"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근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LG전자가 초콜릿폰이나 샤인폰 같은 또 다른 히트모델을 내놓을 수 있을지,LCD패널 시황이 얼마나 오래 LG필립스LCD를 도와줄지,LG화학이 석유화학 시장의 호황을 얼마나 오래 즐길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2008년에는 외부 변수가 도와주지 않아도 꾸준히 고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내성을 키우는 한 해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를 둘러싸고 있는 대내외 환경도 결코 협조적이지 않다.

현대·기아차는 환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기업 중 하나여서 요즘 같은 환율하락 시에는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의 성장세도 주춤해져 비상이 걸렸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내년에 효율적인 해외생산 체제를 갖추는 데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특히 중국에서의 생산능력을 크게 늘려 환율 하락과 시장점유율 감소의 두 가지 위기를 동시에 극복한다는 구상이다.

또 내년 1월에 선보일 대형 세단 제네시스와 고급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모하비 등을 통해 현대·기아차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대내외에 알리는 한 해로 삼기로 했다.

지난 7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SK그룹에 2008년은 새 지배구조에 맞는 경영 시스템을 갖추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도 "지주회사 출범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각 사별 책임경영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금융계열사 처리 문제,최신원 SKC 회장 일가의 계열분리 이슈 등도 올해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SK는 또 이미 매출의 50%를 넘긴 수출 비중을 더욱 늘려 내수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의 완전환 변신을 꾀하고 있다.

포스코 두산 GS 금호아시아나 한진 한화 등 다른 그룹들에도 2008년 최대의 키워드는 글로벌화다.

주요 그룹들의 경영 전략 컨설팅을 많이 맡아온 맥킨지 서울사무소의 한 파트너는 "내년에도 여전히 글로벌화가 한국 기업뿐 아니라 아시아 기업들의 최대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이 그룹들은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글로벌 성장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두산 효성 STX에 이어 내년에는 어떤 그룹이 대형 해외 M&A를 성사시킬지 주목된다.

이미 막이 오른 대한통운 인수전을 비롯해 국내의 우량 M&A 매물들의 향방도 내년도 재계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대내외적인 경영환경이 불확실하고 좋지 않을수록 기업들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지런히 성장의 기회를 찾아나서는 일이다.

영리함과 함께 쥐의 또 다른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민첩성과 근면성을 배워야 한다는 얘기다.

민첩성과 근면성을 갖춘 덕분인지 쥐는 '부(富)의 상징'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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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기업들의 내년 신성장사업 분야

◆삼성=차세대 프린터,시스템LSI,디지털 의료기,가정용 로봇

◆현대.기아차=제네시스와 모하비 등 프리미엄 차량

◆SK=해외자원 개발,리튬이온 2차전지용 분리막(LiBS),콘텐츠 사업,

◆LG=에너지 솔루션,카인포테인먼트(Car Infortainment) 사업,정보전자 소재업

◆포스코=자동차강판,고기능 냉연 등 고부가가치 '전략제품'

◆GS=유전개발,수소 에너지 분야,환경.물사업

◆금호아시아나=해외플랜트 사업,물류.레저사업

◆한진=저가 항공사업,환경 물류 서비스

◆한화=항공기 부품 사업,해외 금융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