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朴龍萬) < 증권업협회 상근부회장 >

채권 시장의 선진화는 우리나라 금융시스템 발전의 전제 조건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채권 시장은 대대적인 구조조정 등으로 재정적자 확대 요인이 발생함에 따라 국채 발행이 정례화되면서 규모 또한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국채 전문 딜러제 도입,채권 시가평가 실시,채권 장외거래내역 실시간 공시 등 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한 여러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채권시장은 여전히 취약한 유통시장 기반,장기채 시장의 미발달,회사채 시장의 낙후 등과 같은 고질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 채권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채권 유통시장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국내 채권 유통시장은 장내와 장외 시장이 동시에 형성돼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과는 달리 장외 시장에서의 거래 규모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 10월 말 현재 채권 장외시장 거래 규모는 장내 시장의 7.4배나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선진국일수록 장외 시장이 잘 발달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채권 장외유통시장은 채권 전자거래 시스템이 잘 갖춰진 선진국과는 달리 사설 메신저를 통해 호가(呼價)와 체결 의사표시가 교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채권 호가 정보가 인맥 위주로 구성된 다수의 메신저 그룹으로 분산돼 종합적인 거래정보 파악이 어렵고 선진국 수준의 투명성 및 유동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종종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작년 말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채권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고 여기에 '채권 장외호가 집중제도'가 포함돼 있다.

이달 4일부터 시행된 '채권 장외호가 집중제도'에 따라 우리나라 채권 유통시장의 구조적 체계를 바꿀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 것이다.

주요 내용은 증권 은행 종금 채권매매전문중개회사 등 채권을 중개 및 운영하는 금융회사가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호가를 증권업협회에 실시간 보고하고 협회는 이를 채권정보센터(www.ksdabond.or.kr)와 정보 벤더사를 통해 실시간 공시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시장 참여자들과 감독기관의 니즈를 성공적으로 충족시켜 준다면 우리나라 채권시장의 체질을 선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호가 정보가 집중돼 공시됨으로써 채권 장외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이 향상돼 시장의 투명성 및 유동성이 제고될 것이며,이에 따라 외국인 등 신규 참여자의 시장 진입도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통화 당국도 호가 정보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게 됨으로써 통화 정책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급격한 채권가격 변동상황 파악이 가능해져 채권시장에 대한 조기 경보(警報) 등 선제적 대응을 통해 채권시장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 채권시장은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선진화를 통해 금융 소비자들의 다양한 투자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특히 이미 선진 채권시장에서 보편화돼 있는 채권 전자거래시스템(ATS)이 조속히 도입돼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주식보다 훨씬 다양한 금융 상품이 거래되는 채권시장 고유의 특성을 반영하고,시장 참여자들의 자율적인 거래수단 선택을 통해 채권시장 전체의 효율성이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채권 장외호가 집중제도 시행은 채권시장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국제적 정합성에 부합한 시장 원리가 도입되는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등을 통해 역내 금융 허브를 달성하고 금융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채권시장의 발달 없이는 금융 강국으로 가기 위한 필수적 요건인 다양한 파생 금융상품 개발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채권시장의 선진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이다.